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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상호 기자, "검찰 출두를 앞두고 생각해봅니다"
    정경사 2006. 4. 13. 17:11

    '안기부 X파일'을 입수해 보도했던 MBC 이상호 기자가 두번째 검찰에 출두한다. 이번에는 '참고인' 신분이 아니라 '피의자' 신분으로 검찰 조사를 받게 된다고 하니 이는 곧 이상호 기자의 형사 처벌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이 소식을 듣는 마음이 참으로 통탄스럽다. 물론 수단이 결과를 정당화 할 수 없다는 것은 인정한다. 그래서 그가 통신비밀보호법을 위반했다고 한다면 그것에 대한 수사는 이해할 수 있다고 치자. 하지만 그리고 나서 결과적으로 나타난 삼성의 불법 행위에 대한 조사도 마땅히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지금의 사회 분위기와 정치권과 재벌계의 움직으로 볼 때 이 역시 흐지부지될 것 같다. 말그대로 본말전도다.

    얼마전 여론조사에서 민주주의보다 경제발전이 더 우선시된다는 조사결과를 보고 깜짝 놀란 적이 있다. 하지만 1등 재벌에 쏟아지는 무수한 선망과 관심과 자기 동일시 게다가 국익과 동의어라고 생각하는 물신주의 풍토에서 씁쓸하지만 그리 놀랄 일이 아니었나 싶다.

    법과 정의 그리고 진실은 항상 함께하진 않는다는 것이 더욱 뼈져리게 느껴지는 오늘, 이상호 기자의 글은 내게 깊은 슬픔을 안기지만 동시에 곧 올 희망을 말해주고 있다.

    검찰 출두를 앞두고 생각해봅니다

    '인혁당 사건'의 진실이 오늘 결국 빛을 보았습니다. 30년만의 일입니다. 지난 어둠의 시절, 가슴속 깊은 곳 내내 진한 그늘로 남아있던 그곳에도 한줄기 진실의 빛이 비춰졌습니다. 그곳엔 '추악한 시대의 야만'이 그득했습니다. 눈먼 재판부의 엉터리 판결이 있었고 불과 18시간 만에 전격적으로 사형이 집행되어 버렸습니다. 대한민국 사법부는 '살인집단'으로 전락했고 이성의 힘은 종언을 고했습니다. 예상대로 전격적 처형의 배후에 독재자 박정희의 '지시'가 있었다고 합니다. '혹시나'가 '역시나'로 반복되는 역사의 허탈함을 다시금 느끼게 됩니다.

    '국민포털' 네이버에 오른 인혁당 관련 기사를 읽고나서 언제나 처럼 댓글을 열어 봤습니다. 그리곤 이내 익숙한 절망과 조우합니다. 분노한 네티즌들이 인혁당 사건 조사결과 마저 'MBC 살리기 위한 물타기', '노빠의 불끄기' 라며 맹렬히 비난하고 있었습니다.

    상식적인 질문이 허락되지 않는 사회 속에 던져지지 못한 질문은 혀를 굳게 하고 안으로 안으로 삭아들어갑니다. 그리곤 결국 우리의 내일을 어둡게 만듭니다. 역사의 발전이란 아무리 하찮은 질문이라도 던져질 수 있는 '공론의 장'을 지켜내기 위한 합의의 과정이었습니다. 비록 나와 생각과 다르더라도 남의 질문이 들릴 수 있도록 내 목소리를 낮춰주는 것이 민주시민의 최고 덕목인 것을 우리는 압니다. 하지만 지금은 아무 말도 들리지 않습니다. 사방 고함과 욕설이 난무합니다. 농민이 맞아죽어도, 역사가 후퇴하고 가짜가 판을 쳐도 관심 조차 없습니다. 창밖엔 빈틈 없이 완성된 겨울이 얼음장 처럼 빛납니다.

    내일 오전 저는 검찰에 출두합니다. 저에 대한 검찰의 사법처리 방침이 정해졌다고 합니다. 불과 몇달 사이 신분이 '참고인'에서 '피의자'로 달라져 있더군요. 사회적 관심이 다른 곳으로 쏠린 사이 삼성 비자금과 검찰로비 등 숱한 국민적 의혹은 이렇게 넘어가기로 한 모양입니다. 수사도 도청 자체에 집중되는 바람에 X파일의 내용 쪽으로는 한발짝 진전이 없었습니다. 결국 홍석현 전 대사나 이학수 비서실장은 무혐의나 불기소 쪽으로 가닥이 잡혔고, 이건희 회장의 이름은 언급조차 되지 않은 지 오랩니다. 황우석 교수 사건으로 자신감을 회복한 〈중앙일보〉는 어느새 '황우석=국익=이건희' 공식을 들고 되치기 한판을 시도하고 있군요.

    그래도.. 각오했던 길이기에 피하지는 않겠습니다. 다만 문제를 제기한 당사자로서 X파일 아젠다를 끝내 지켜내지 못한 책임이 어깨를 짓누릅니다. 이제 일어나야 할 시각입니다. 그동안 철없는 제 행동과 부질없는 기사 몇줄 때문에 상처 받으신 분들에게 깊은 위로를 전합니다. 특히 몇몇 분들께는 인간적으로 죄송한 마음도 금할 수 없습니다. 조용한 때가 오면 한 분 한 분께 소주 한잔 따라 올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벌써 일 년이 지났군요. 작년 12월 이맘때, X파일 테잎을 구하러 미국으로 떠날 무렵이 먼 과거의 일처럼 느껴집니다. 다시 돌아오지 못할지도 몰라 그땐 짐짓 비장했었습니다. 그 일로 일년 내내 참 많은 눈물을 버텨내야 했고, 참 많은 사람들이 노심초사 고생하기도 했었지요. 모두들 고생하셨습니다. 낙담하지 맙시다. 제법 살다보니 봄에 대한 확신이 들더군요. 잘 다녀오겠습니다. 건강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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