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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들에게 국민은 없다 - 노암 촘스키
    독후감 2006. 4. 13. 17:09

    구 소비에트 연방이 몰락하고 공산주의가 몰락하면서 마치 이때를 천년 전 부터 준비라도 한 것처럼 세계화라는 것이 나타나더니 또 어느새인가 이와 쌍동이인 신자유주의라는 것이 우리들의 정치와 경제 그리고 노동 속에 깊숙히 침투하였다.

    개인적으로 신자유주의 시대가 몰아칠 때 군대란 곳에서 삽질이나 하고 있다가 학교로 돌아와 90년대 말에 마지막 학교 생활을 나름대로 만끽(?)하다 보니 어느덧 IMF가 터지고 했던 그 정신없던 변화와 고통의 실체가 실은 세계화란 것이었고,  신자유주의의 거대한 패러다임이었다고 촘스키는 책을 통해 한국의 나와 그 시절을 겪었던 우리들에게 정확하게 설명해주고 있다.

    신자유주의는 공산주의의 견제 속에서 잠시 움츠러들었던 과두지배의 한 형태이며 이는 포장만 현대적일 뿐 내용 자체는 1세기 전의 거대 자본과 본질은 동일하다. 쉽게 말하자면 부자들의 이익을 더욱 극대화 해주는 전세계적인 착취와 억압의 시스템인 것이다.

    기업이란 민주주의가 아니며 이익을 추구하는 조직이다.
    그간 어느정도 민의를 대표했던 정부와 의회마저도 시장경제라는 신자유주의적 종교앞에서 국경없는 기업의 막강한 자본 앞에 굴종하게 되고 심지어 협력하는 단계로 즉 부자의, 부자에 의한, 부자를 위한  그런  체제가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WTO, MAI, NAFTA 등등의 국제 협력, 협정 역시도 소수의 부자들을 살찌우기 위한 계약이며 특히 생산성과 직접 관련이 없는  금융이 자유롭게 국경을 마음대로 넘나들게 되면서 그들의 이익을 더욱 극대화 시키고 있다. 심지어 이를 위해 각나라의 정부정책과 국제관계마저도 좌지우지하고 있다.

    역사적으로 볼때 마샬플랜에 의해 유럽 부호의 돈이 뉴욕의 은행으로 흘러들어간 것이나 빈부격차가 심한 남미의 부호들이 돈을 해외로 막무가내로 유출시켜 경제파탄이 된 사례 그리고 지금에 있어서는 투기 금융들의 전세계적 이동 등을 통해 국가와 민주주의와 국민이라는 공동체의 가치를 희롱하며 돈을 벌고 있는 것이다. 우리 현실에서도 개미의 절대다수가 주식을 통해 이익을 볼 수 없는 것이나  고용의 창출없이 기업의 이익은 늘어나는 비정규직의  양산되는 것 또한 극명한 사례이다. .

    시장이라는 냉혹하고 엄격한 법칙은 빈자에게만 가혹하며 부자들에겐 너그럽게 작용한다. 시장은 더 이상 공정한 게임의 룰을 제공하는 합리적인 장치가  아닌 것이다. 그동안 남미와 달리 아시아의 비약적인 발전은 자본의 해외 유출을 막고 정부의 적극적인 시장 개입을 통한 양극화의 방지가 유효했던 것이다. 그렇다고 이것이 박정희식 군사독재의을 긍정하는 듯한 설명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70년대까지 신자유주의의 무자비한 칼날이 휘둘러지지 않았으며, 국민의 민의를 대표하는 정통성있는 정권의 강력한 리더십과 미국의 지원을 받는 반공독재정권과는 성격이 다르기 때문이다.

    아무튼 남미에 비해 상대적으로 약했던 동아시아의 빈부격차는 지난 90년대 말부터 서서히 신자유주의 체제로 편입됨에 따라  노동시장이 붕괴되고 양극화 문제가 심화되는 등 더욱 확대되고 있다. 최근에 대두되고 있는 영리법인의 병원설립 문제는 그나마 사회 통합을 지탱해주고 있는 의료기관과 건강보험의 체제마저도 무너진다는 신호다. 이는 노무현 정권이 신자유주의 체제에 매우 충실하다는 것을 단면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그럼 희망은 있는가?
    촘스키는 1세기 전과 조금도 변하지 않은 극악무도한 자본의 칼날을 막을 방패를 제시한다.  근데 서운한 것은 '방패'만이란 점이다. 물론 행동하는 지식인으로서 부조리에 대한 비판은 매우 높이 살만하다. 그러나 단순한 방패가 아닌 1세기 전 맑시스트들 처럼 자본의 억압에서 해방하기 위해 자본의 심장에 칼을 꽂는 구체적인 투쟁에 대한 연구가 많지 않은 것이 조금 아쉽다. .. 촘스키는 휴머니즘이라는 관점에서 피지배 다수, 노동자 농민 특히 지식인과 언론이 신자유주의라는 거대 악의 음모를 직시하는 것과 연대를 통한 이의 저지를 주장하고 있다.

    사적유물론을 통한 공산주의 혁명이라는 과학적이고 강력한 대안에 비해 촘스키의 민중들의 반세계화 투쟁과 희망은 책에서 그의 신랄한 신자유주의 비판에 비하면  다소 감정적이며 구체적인 행동지침 같은 것은 드물다. 하지만  과두지배를 불식시키기 위해 사태를 올바르게 아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것과 그것을 저지하는 투쟁은 올바른 언론과 전세계 민중의 연대라는 것은 역사적 의미가 있다고 본다.

    과두체제나 독재를 물리치고 나서  '자유에서의 도피'를 통해 다시 억압의 굴레로 들어간 여러 혁명의 전례가 있지만 민중과 역사의 힘은 그것이 1세기전의 공산주의가 아닌 해방과 휴머니즘의 대안으로 우리를 안내할 것이라는 희망을 가진다.

    (뱀발)

    "교수님께서 바람직한 발전의 모델을 이룬 나라가 현실세계 중 어디라고 보십니까?"란 학생의 질문에, 촘스키 교수는 이렇게 대답했다고 합니다.

    "한국(South Korea)입니다. 한국 국민들은 제국주의 식민 지배를 딛고 일어나서, 다른 나라에 종속되지 않고 독자적으로 경제발전을 이루면서, 동시에 독재정권에 항거해 평화적인 방법으로 민주주의를 이룩해냈습니다. 세계 최고의 휴대전화와 인터넷 보급률을 자랑할 정도로 첨단 기술이 온 국민들에게 골고루 퍼졌고, 2002년에는 네티즌의 힘으로 개혁적 정치인을 대통령으로 선출할 정도로 풀뿌리민주주의가 발전했습니다."  <주식회사 대한민국 희망보고서> p177-178,이원재 저

    그들에게 국민은 없다 - 10점
    노암 촘스키 지음, 강주헌 옮김/모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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