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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콘크리트 유토피아 (2021)
    영화이야기 2023. 11. 29. 10:23

    오늘 하루 휴가를 내고, 이틀 전 맛이 간 자동차 에어컨을 정비소에 맡기고 20여 분 걸어 롯데시네마에서 <콘크리트 유토피아>를 보았다. 


    -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 


    일찌기 니체가 선악의 저편을 주장한 바 있다. 신 마저 죽은 세상에 절대적 진리는 없고 그건 각자의 해석의 영역과 그 차이가 있을 뿐 이리고 하였다. 그런 지 한 세기가 넘었는데 우리 현대인은 아직도 선악을 가르는 일에 그렇게 열심이다. 과학 하다못해 양자역학에서도 물질은 입자이면서도 파동의 이중성을 가지고 있는 그 모순을 증명하지 않았나. - 오펜하이머를 보지 못해한 비약이라 생각하지만 - 


    나는 이 영화의 심오한 비유와 상징 그리고 주제에 대해선 알지 못한다. 그냥 오늘 영화 보고 나서 드는 생각인데, 이 영화의 주된 무대가 되는 '아파트'도 탄소중립의 관점에서 보면 매우 훌륭한 탄소 에너지 절감 주거형태라고 한다. 이처럼 모든 현상에는 명암이 있고 고정 관념과 다른 실질적 효용이 있을 수도 있다.


    나는 영화의 매우 훌륭한 점으로 의도했는지는 모르겠으나 중반까지 무조건적으로 박보영의 입장을 내세우기보단, 이병헌의 캐릭터가 너무 살아있어서 되려 그의 관점이 이해되는 측면이 자연스러웠다는 점이다. 생존이냐 도덕이냐 이 둘 사이의 긴장과 균형이 나름 잡혀있어서 좋았다. 심지어 하나의 편을 선택하란 강요가 없어서 두 입장을 위선과 위악으로 보이면서 동시에 수용되는 중첩적인 사유에 그동안 영화를 보면서 느끼지 못했던 재미있는 경험을 한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재난 상황에서 자신들의 생존을 위해 배타적이 되고 이기적이 되는 집단 심리가 이해되는 측면이 있고, 그런 와중에서도 무조건 대중을 좇기보다는 양심 있는 개인들이 휴머니즘을 추구하는 것도 존중하고 지향해야 할 덕목으로 보였다.


    거기에 한국 사회 특유의 계급의식, 정통성을 건드린 부분도 있었는데 외부적으론 유일하게 무너지지 않은 황궁 아파트 옆에 있었던 부유한 팰리스 아파트 주민들의 행태를 풍자한 모습이고 내부적으론 집주인이냐 임차인이냐를 가르고 실제 거주자와 외부인을 차별하는 부분이었다. 사농공상, 진골성골 따지던 유교적, 카르텔을 비꼬는 부분이었는데, 알고 보니 이병헌은 아파트 매매 사기를 당했던 피해자였던 것이다. 그런데도 기존 거주자로 인정되지 못한다. 이 아파트에 20년 넘게 경비를 한 사람도 마찬가지다. 


    알고보면 이병헌이야 말로 이 아파트의 주민이 되길 누구보다 원했던 사람이었다. 그래도 배척당했고 그것도 한방에 무너졌다. 어떤 소명할 기회조차 박탈당했다. 박보영으로 대표되는 것은 바로  성리학적 도덕주의 그 자체였다. 개인의 잘못이나 오류를 개별적으로 지적하고 바로잡는 것이 아니라 갑자기 인간 자체를 도덕이란 잣대로 부정해버렸다. 그러더니 뭔가 설득력이 부족했다고 느꼈는지 이병헌이 갑자기 자신의 정체를 고발한 학생을 냅다 들어서 벼랑 밑으로 던져버린다. 


    바로 이 장면부터 아슬아슬했던 혹은 다른 관점이 허용되었던 밸런스를 노골적으로 내던져버렸다!


    그 도덕주의 앞에서 '품성'은 살아남았고 공동체는 파편처럼 해체되었다. 도덕을 저버렸던 남편은 죽음으로 그 죄를 씻게 되었다. -아마도 대지진 초반에 트럭에 깔린 여성을 외면하고 혼자만 살아남은 죄까지- 


    그러더니 박보영은 그 험하다던 서로가 서로를 죽인다던 심지어 인간이 인간을 잡아먹기까지 한다던 야생의 아파트 밖 세상에서 갑자기(!) 천사같은 사람들의 오순도순한 공동체에 속하게 되더니 급기야 문제의 '주먹밥'까지 얻게된다. 식기 전에 먹으라는 말과 더불어. 


    아니 이게 뭐란 말인가. 사람들이 싸우고 죽고 그 난리는 도대체 다 뭐란 말인가. 보다 적극적으론 이병헌 등에게 외부인에게 좀 더 개방을 하라거나 심한 모욕을 주는 벌칙을 완화해달라거나 요청을 하고 공론화하면 될 것이고 소극적으론 누구처럼 아파트에서 뛰어내린 극단적 의사표현 말고 박보영은 남편과 더불어 조용히 아파트를 떠나면 될 것을 말이다. 결말에선 유토피아는 우뚝 솟은 콘크리트 아파트가 아닌 전복된 아파트 폐허에 꽃피고 있다고 하지 않았던가. 도덕이 없는 자들의 심성에 보이지 않는 곳이란 뜻으로 해석된다.


    생존을 위해 혹은 집단을 위해 냉혈한 무사는 도덕이 빠져있음으로 제거되어야한다는 것이 이 영화의 메세지라면 정말 불편하고, 그냥 대안없는 정치적 올바름의 나쁜 예로만 느껴졌다. 민주주의는 인간은 도덕, 선악을 상관하지 않고 서로가 서로를 견제할 수 있고 다수의 뜻으로 선을 긋는 장치다. 그런데 영화에선 선하지 않으면 악하고, 휴머니즘이 없다면 파시즘이라고 단정한다. 그야말로 도덕 지상주의다. 


    정말 <오펜하이머>를 봤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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