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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몬태나 (Hostiles, 2017)
    영화이야기 2018. 4. 23. 15:13

    보는 내내 무섭게 몰입하게되는 영화. 왜냐하면 인생에 중요한 것이 다 담겨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내 삶의 주인은 나라는 것이다. 어차피 사건은 예기치않게 일어나기 마련이며 삶은 살아야하니 말이다.


    인생은 스포츠가 아니다


    우리는 늘 삶에서 정답과 매뉴얼과 약속을 추구한다. 그러나 번번히 실패하고 좌절하고 때로는 행복해하기도 고독하기도 하게 된다. 아마도 스포츠 경기처럼 명확한 규칙과 심판이 없을 뿐만 아니라 그 안에서 벌어지는 모든 것을 오롯이 혼자 판단하고 선택해야하기 때문이다. 현대인들은 종종 이것을 잊고 산다. 마치 아파트에서 태어나 아파트에 살고 있으면 다른 형태의 주거형태를 알지 못하거나 궁금해할 필요가 없는 것처럼 예전 관습은 잊혀지고 지금의 방식대로 주거생활이 주어져있는 것을 당연한 조건으로 생각하게 된다.


    또하나 인터넷과 모바일로 언제 어디서든 빠르고 쉽게 정보를 얻을 수 있으며 소셜네트워크 등을 통해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다른 사람들이 무엇에 관심을 갖고 무엇을 하고있는지 알 수 있다. 현재 이것이 과잉되어 자신이 어떤 결정을 할 때 필요한 정보는 물론 심지어 결정까지 타인에게 구하는 지경이 되어버렸다. 스포츠가 아닌 인생에서 어쩌면 규정과 심판이 생겨버리는 꼴이 되어 버린 것이다.


    영화 몬태나의 시작은 미 서부의 광활한 사막과 골짜기 같은 대자연의 모습을 보여준다. 여기서부터 가슴이 뛴다. "아 인생은 원래 저런 곳, 야생같은 것이구나"


    영화는 전역이 얼마 남지 않은 베테랑 대위 조셉에게 인디언 추장을 고향까지 안전하게 보내주라는 대통령의 명령을 받게 된다. 인디언 추장은 투옥되기 전 미서부 점령에 대항하여 잔인하고 잔혹하게 미군병사를 해치운 것으로 유명했다. 추장은 긴 수감생활 기간 중 말기암 판정을 받아 시한부 선고를 받게 되는데 온정적인 인디어 유화정책을 연출해 여론의 지지를 노리는 대통령은 이 늙고 병들어 죽음을 앞둔 추장을 고향으로 보내기로 한 것이다. 


    추장과 깊은 원한관계에 있는 죠셉은 갈등 끝에 부하들과 함께 몬태나로 가는 명령을 받고 떠난 여정 중에 코만치라는 잔인무도한 인디언 부족에게 남편과 두딸 그리고 갓난아기까지 살해당한 여인 로잘리를 만나게 된다. 상처만 가득한 이들과 또 다른 부하들과 함께하는 삶과 죽음의 몬태나로 가는 길에 인생이 특정짓기 힘든 어떤 힘겨운 과정이며 자신을 극복하는 그 과정이야 말로 삶이 추구해야하는 것임을 깨닫게 된다.


    지금의 삶의 방식이 원래부터 그런 것은 아니다.


    최근 소위 성인병인 비만, 당뇨, 치매 등이 급증하는 원인을 지금 먹고 있는 음식때문이라는 의학계의 주장이 있다. LCHF(저탄수 고지방)영양학을 동의하는 측에선 그것이 탄수화물과 설탕때문이라고 보고 있다여기서는 과일 조차도 당을 함유하고 있기 때문에 멀리하라고 한다. 우리가 신석기 농업혁명을 통해 밀과 쌀과 같은 곡물을 먹기 시작한 지가 1만 년이 넘었지만 인류가 지구상에 출현한 30만 년 전부터  그전까지 해온 사냥과 채집에 몸의 기전이 그대로 유지되어 있다는 것이다. 즉 지금 거리마다 사무실마다 만나는 우리 현대인의 몸과 창과 활을 가지고 짐승을 사냥하던 원시인이 음식 대사 기전이 아주 완전히 똑같다는 얘기다. 그래서 과일과 곡물의 대량 재배로 배부르게 먹으면 우리 몸은 생존을 위해서 재빨리 내장에 지방으로 축적하고 있다는 것이다. 빌딩숲에 있는 우리 몸은 여전히 육식과 배고픔에 최적화되어 있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지금 우리가 먹고 마시는 것과 방법도 애초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삶은 위험하고 적대적인 것으로 둘러 쌓여있다.


    이 영화는 삶의 본질적인 위협과 이에 맞서는 개인을 그리고 있다. 단순히 피해자, 가해자를 나누거나, 어설프게 가해자 프레임으로 피해자를 위로하거나 기만하려고 하는 것 같아 보진 않는다.


    삶은 안전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예전부터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 기본적으로 자연이 그렇다. 자연은 우리에게 공기와 대지와 물과 음식 등 풍요로움을 주지만 '자연재해'란 말이 있듯이 동시에 온갖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 우리 인류가 창조한 도시와 사회도 마찬가지다. 기아와 전쟁 치안부재의 위협 등은 현재도 마찬가지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교통사고처럼 그런 우연은 생존을 위협할 만큼 갑작스레 우리 앞에 벌어지기도 한다. 광활한 우주에서 지구로 지구에서 세계로 세계에서 각나라 각나라의 정부, 정치조직, 내가 속한 사회, 이웃, 가족까지도 항상 나를 보호해주거나 우호적이거나 하진 않다. 결과적으로 적대적인 속성을 항상 내포하고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


    우리는 안전과 평화를 해결하는 방법으로 규칙과 제도 그리고 높은 시민 의식으로 방지하거나 통제 수 있다고 믿고 있고 실제로 어느정도 효과가 있지만 본질적으로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다


    게다가 최근 100여년 동안 인류가 이룬 과학기술을 바탕으로한 정치, 경제, 사회의 눈부신 발전은 지구가 생겨난 45억년동안 기아, 질병, 치안 등을 획기적으로 감소시켰기 때문에 지극히 오만할만하다


    하지만 삶은 생존이란 관점에서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 결국 사건의 연속이며 그걸 해결하는 방법은 남이 아닌 나 자신인 것은 변한 게 없으며 이를 직시해야 한다


    아무리 인터넷이 발전하고 소셜네트워크가 관계를 넓혀도, 민주주의와 복지제도가 진보하더라도 내 삶을 지키고 책임지고 죽기전까지 살아가는 것은 순전히 나 스스로의 몫이다. 정답이 없는 생존의 관점에서 나를 제외한 모든 것은 적대적일 수 밖에 없다


    주인공 조셉은 정복자 미군에 소속되어 수많은 인디언을 필요이상으로 학살했고, 그 배경엔 자신의 피와 살같았던 전우의 죽음이 있었다. 그는 철천지 원수인 인디언 추장 옐로우 호크의 호위를 명 받았을 때 밤새 광야에서 울부짖는다. 단순히 여생을 위해 연금을 포기못하는 생활인으로서 고뇌하는 늙은 군인이기 때문은 아니였을 것이다. 


    적어도 그 명령을 받아들인 그 고민은 밀그램 복종같은 권위에 핑계를 대는 회피나 가해자 논리로 인한 차별성에 기인한 것은 아니다. 그는 생존의 관점에서 마음을 정리하고 자신의 잔혹한 행위를 반추하여 이 세상은 적대적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를 막기위해 집단이나 조직이 필요하다고 보고 있으며 이를 위해선 파괴와 학살이 가능하지만 그것이 절대적인 진리, 변하지 않는 원칙은 아닐 수도 있으며 인생에서 적과 동지가 따로 없고 무리가 아닌 철저히 나 혼자 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미치지 않았나 싶다. 


    이러한 생각의 변화가 가장 극적으로 나타난 것은 사적으로 인디언 원주민을 살해한 죄목으로 체포되어 교수형에 확정된 자신의 옛 부하인 죄수의 논리와 속삭임에도 번민하지 않는 부분이다.


    삶이란 타인에게 의지하지 않는 것


    영화에서 조셉을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지점은 마지막 총격씬이라 할 수 있다. 그는 인디언 추장의 주검을 매장하는 것을 반대하는 미국인 지주의 적대적인 행위에 총과 칼로 대답한다. 남편과 세자녀를 잃은 로잘리로 주저없이 총을 든다. 


    잔혹한 정복자 부대의 대학살자였던 조셥은 그의 가장 큰 적대자인 추장 옐로우 호크와 동행하며 화해를 배웠고, 백인 측의 가장 가여운 피해자 로잘리에게 순수한 인간적 친절과 사랑을 베풀었다. 같이 동행한 부하의 죽음과 부상에 누구보다 뜨거운 눈물로 깊은 애도를 표했다. 게다가 자신의 치부와 은밀한 욕망을 가장 잘 알고 끊임없이 들춰내는 전부하였던 살인범의 유혹에서 흔들리지 않고 원칙대로 대응한다. 그런 그가 지주에게 거침없이 총을 뽑아 든다. 


    그로인해 결과적으로 남은 부하와 인디언 가족은 어린 소년을 남겨두고 모두 죽임을 당한다. 만약 생명을 소중함과 인간 저마다의 입장과 평화와 안전을 고려했다면 한번의 양보로 옐로우 호크가 자신의 생가터에 묻히진 못했더라도 모두 살아남았을 것이다. 죠셉의 손에 몰살당한 상대편도 포함해서 말이다.


    그러나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생명의 위협을 몇 번이나 넘겨가며 찾아간 고향같은 땅 몬태나에서 죠셉은 부상당해 도망가는 상대편을 끝까지 쫓아가 단호히 칼로 목을 그어버린다. 마치 그게 인생이고 내가 곧 죽더라도 이 세계가 그렇게 살아가게 되어있다고 울부짖듯이 말이다.


    주인공 죠셉이 손에서 떼지 않았던 책 그리고 인디안 아이에게 건네주었던 <카이사르>에서 찾거나 알려주고 싶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어쩌면 혹시 "아무리 나쁜 결과로 끝난 일이라 해도 애초에 그 일을 시작한 동기는 선의였다." 이었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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