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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방인 - 알베르 카뮈 저
    독후감 2017. 6. 8. 22:00

    <디태치먼트>라는 영화를 보고 <이방인>이란 책을 읽게 되었다. 노벨문학상 수상작이고 햇빛 때문에 사람을 죽였다는 에피소드로 유명한 작품 정도로 알고 있었다. 책은 중학교 때 사놓긴 했지만 읽어 본적은 없이 책장에 그간 있는 듯 없는 듯 꽂혀있었다. 여튼 <디태치먼트> 속 헨리라는 주인공의 성향과 번민을 보고 깊이 공감되어 이 영화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카뮈가 궁금해졌고 책장 속에 있던 이방인을 꺼내 들게 되었다. 


    이 영화 오프닝에 카뮈가 썼다는 문구가 나온다.

    '그리고 내가 이렇게 깊게 느낀 적이 없었고, 동시에 나 자신에게 격리돼 세상에 존재하는 느낌이다. (and never have i felt so deeply at one, and the same time so detached from myself, and so present in the world).'

    단순히 영화 속 헨리의 행동을 깊이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겠다 싶어 꺼내든 책인데, 막상 펼쳐 보니 생각보다 얇았다. 중학교 때 이후 처음 알게 되었다. 그래서 더 가벼운 마음으로 잠시 앞부분을 뒤적이다가 말 생각이었는데 한 번에 다 읽게 됐다. 


    소설 자체는 그 유명한 첫 문구 - 어머니가 죽었다 - 부터 인상적이긴 했다. 이야기를 풀어가는 문체의 심드렁함도 매력적이라 금세 빠져들게 되었다. 철학적 내용은 별개로 하더라도, 헐리웃 영화에 흥행 요소와 같은 것이 소설을 이끌어가는 것 같이 느껴졌다. 말하자면 헐리웃 공식처럼 죽음, 연애, 살인, 법정 공방이 때맞춰 계속 나와 지루할 틈이 없었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방인은 디태치먼트란 영화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지 못했다 영화 속 헨리와 이방인의 뫼르소에 대해 느끼는 감정이 전혀 다르게 느껴졌다. 


    카뮈가 실존주의에서 강조한 것이 부조리와 부조리한 인간이라고 한다. 여기서 부조리란 합리적이지 않은 것, 알 수 없는 것, 그리고 모순으로 가득 찬 우리가 살고 있는 필연적 세계 혹은 구조를 말한다. 이에 대응하는 개인은 자살을 하거나 체념하거나 하지 말고 반항해야 하며 이럴 때 인간은 이방인으로서 자신의 실존을 인식하는 존재로 거듭나게 된다고 한다. 이 소설의 핵심은 세상에 무관심하고 인간과 관계에 수동적인 그리고 이 모든 것에 냉소적이면서 자기 감정에는 솔직한 뫼르소가 저지른 살인 때문이 아니라 자신의 어머니의 장례식장에서 울지 않았기 때문에 사형에 처한 것을 주목하고 있다. 말하자면 세상의 부조리에 대해 깨어난 개인이 이방인이고 마지막에 뫼르소가 표출했던 자신과 삶에 대한 살아있는 감정은 되려 세상의 부조리에 타협하지 않는 자세 때문이고 이것이 이방인의 궁극적인 반항이란 주장이다. 그런데 이 주장에는 뫼르소의 총에 맞아 죽은 주검에 대한 시선은 없다. 마치 완벽한 이방인을 부각하기 위한 재물로 보인다.


    어떻게 보자면 소설이 쓰인 당시보다 현재 관점에서 보면 뫼르소란 인물의 행동과 사고는 그다지 낯설지 않게 느껴진다. 소설네트워크로 대표되는 최첨단 인터넷 환경은 시공간을 넘나드는 소통과 연결을 가능하게 만들어 이제껏 경험해보지 못한 커뮤니케이션과 정보 전달의 시대를 선보일 것으로 기대되었지만 오히려 물건을 살 때나 택시를 탈 때나 주식을 거래하고 은행 계좌를 개설할 때도 서로가 말을 하지 않아도 되는 극단적으로 단절된 관계를 양산하고 있다. 이제는 가족끼리 식사할때도 저마다 스마트폰에 고개를 떨구고 있는 풍경이 낯설지 않다.  소통 부재의 시대이다. 스마트폰을 통해 메시지를 보내고 SNS으로 사람들과 관계를 맺 것은 자기 일방적이기 쉽다.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본다는 인지편향이야 말로 넷상의 커뮤니케이션의 본질이다.  보여주고 싶은 것만 보여주고 보고 싶은 것만 보는 이것이야 말로 표리부동한 첨단 부조리다. 


    어머니의 장례식을 치르고 다시 회사로 복귀한 뫼르소의 일상에 대한 묘사가, '아무것도 변한 것이 없다는', 그래서 깊이 공감되고 이해된다. AI라는 인간 대체의 4차산업혁명이라는 기술과 효율이 우선이고 경쟁이 더욱 심해지는 구조다. 이 속에서 인간은 부속화되다 소외되고 인간과 관계가 불안정해지기 쉽다. 자기 방어 기제 관점에서 보면 지금이야 말로 부조리를 깨닫는 이방인이 되기에 최적화된(?) 구조가 아닌가 싶다. 


    다르다와 틀리다의 차이를 이해한다면 이방인의 사람에 대한 무관심과 세상에 대한 거리두기 그리고 무차별적 솔직함은 이해되고 존중받아야 마땅했으나 뫼르소가 해변에서 총을 발사하면서 부조리한 세상에 대한 염세적 태도에 대한 공감은 길을 잃어버리게 되고 영화 속 헨리와 달리 모든 것이 엉망진창이 돼버린 느낌이 들었다.


    중요한 것은 아랍인 살인에 대한 선고인 사형에 대해 동의한다는 점이다. 태양이 강렬한 백주에 총을 다섯방이나 쏘아 사람을 죽인 행동은 정상참작의 여지가 없다. 게다가 카뮈도 뫼르소가 자라온 환경, 부당한 억압, 착취, 소외로 인한 부조리에 대한 서술 조차도 하지 않는다. 한가지 유감이라면 개연성에 기초한 판결이 있지만

     전체적인 배경이나 설명이 부족한 면이 있는 정도의 캐릭터로 해석을 했고 보다 간단히 표현하면 그저 남들과 '다른' 사람이지 그 행동이 '틀렸'다고 느껴질 정도는 아니었다. 


    이해할 수 없는 뫼르소, 그리고 죄에 대해 판단하지 않는 이상스런 법정을 해석하는 나름의 방법으로 게슈탈트의 이론을 적용해 보자면 뫼로소 자신은 부조리한 세상을 투사했고, 투사되지 않는 돌연변이 같은 개인인 뫼르소를 단죄한 법정과 군중은 내사된 상태라고 보면 타당해보인다. 이런 면에서 영화는 카뮈와 이방인에서 모티브를 가져왔지만 부조리와 부조리한 인간이 반항 대신 같이 아파하는 사람끼리 손을 내미는 모습을 통해  연대하는 거대한 변화의 힘을 유추하게 함으로써 그보다 훨씬 희망적이며 동시에 현실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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