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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맨해튼 (Manhattan, 1979)
    영화이야기 2013. 9. 16. 22:13



    맨해튼
    ★★★★


    우디앨런의 1979년도 작품이다. 뉴욕 그리고 맨하탄에서 벌어지는 남녀의 연애이야기를 그리고 있는데 2013년 현재의 눈으로 봐도 휴대폰만 없을 뿐이지 지금의 한국과 크게 다르지 않은 느낌이 든다. 비록 그것이 시대를 초월하는 연애의 이야기라서만이 그런 것이 아니라 대도시라는 환경이 주는 공통점 때문이란 생각이 든다.


    영화의 줄거리는 단순하다. 서로 한계가 눈에 보이는 대상과 연애를 하고 있는 두 남녀가 있는데, 결국에는 그 한계점을 극복하고자 하는 결말이다. 그런데 그 두사람 모두 진실한 사랑에 눈을 뜬 것이 아니라 즉흥적이란 점에서 무언가 자연스럽지 못하다. 그래도 좋다는, 혹은 원래 뭐 그런거라는 냉소적 분위기는 그 곳이 맨하탄, 즉 도시기 때문이라고 우디앨런은 말하는 것 같다.


    다시 영화의 내용 속을 들여다보면 마흔 두살인 TV작가인 남자는 17살 고등학생과 사귄다. 그냥 만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사귄다. 둘은 밥도 먹고 쇼핑도 하고 같이 잠도 자고 하지만 내실 남자는 언제나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서글프다기 보다는 은근히 그 한계를 즐기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다. 자신을 맹목적으로 따르는 학생을 좋아하긴 하지만 자칭 지성인인 그는 자신의 그 학생의 징검다리, 즉 청춘을 더 잘 즐길 수 있는 하나이발판으로 규정짓고 언제나 그에게 강조한다. 


    여자 주인공의 경우도 비슷하다. 유부남을 사귀고 있다. 이 경우도 남자는 가정을 깰만한 사랑 혹은 용기를 지니고 있지 못하다. 그 유부남이 바로 남자주인공 아이작(우디 앨런 분)의 친구라서 자연스럽게 자신의 불륜 상대인 여자주인공 메리(다이안 키튼 분)과 아이작은 어울리게 된다. 재미있는 것은 아이작의 친구인 유부남 예일은 불안한 불륜관계를 청산하기 위해 아이작에게 메리를 사귈 것을 종용한다. 아이작 역시 자신의 어린 여자친구 트레이시(마리엘 헤밍웨이 분)을 가볍게 정리하고 메리와 사귄다. 


    아이작이 예일과 친구이기 때문에 어쩔 수없이 예일 부부와 같이 만날 기회가 생긴다. 예일 부부와 함께 극장을 찾은 메리와 예일, 그리고 그 둘의 관계를 걱정어린 모습으로 지켜보는 아이작의 모습이 보이고, 이 일이 있은 후 얼마 안있어 아니나 다를까 메리는 사랑을 외치며 예일과 다시 만난다는 것을 고백하고 아이작과 이별을 통보한다. 흥분한 아이작은 그 길로 예일의 직장인 학교로 무작정 달려가서 그 둘의 사랑을 원망하면서 특유의 시니컬함으로 친구의 위선을 꼬집는다. 


    그러나 불현듯 뉴욕 거리를 한참을 달리고 달려서 자신의 옛 애인인 트레이시를 찾아간다. 이제는 18살이 된 트레이시는 다시 찾아온 그를 조금 의아하게 생각하지만 여전히 그를 사랑하는 모습은 숨겨지지 않는다. 6개월 기간으로 영국으로 유학을 떠나는 트레이시를 막무가내로 가지말라고 잡는 아이작을 향해 6개월은 사랑하는 두 사람에게 그리 긴시간은 아니라며 넌지시 말한다. "아이작, 사랑을 믿으세요" 라고.


    영화 속 남녀의 연애이야기를 정리하면 매우 단순하지만 우디 앨런은 영화 속엔 조금 특별한 느낌을 준다. 우선 스탠딩 코메디언인 자신이 직접 등장해서 쉴새 없는 수다와 감칠맛나는 조크를 떠들어댄다. 더욱 아이러니한 것은 코메디언인 주인공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캐릭터는 항상 걱정이 많고, 수동적이며 뭔가 불안해보이고 또한 꽤나 지적이다. 또 그의 유머와 지성은 실제 예술을 이야기할 때가 아니라 타인의 위선을 꼬집을 때 빛을 발하지만 자신의 위선에 대해선 항상 합리화를 궁리해 내는 그런 인물이다. 


    또 하나는 음악와 뉴욕이다. 거쉰의 <보헤미안 랩소디>가 뉴욕이며 이 오래된 교향곡은 마치 찰리 채플린의 무성 영화 처럼 뉴욕과 기가 막히게 어울린다. 장면 전환마다 템포있게 맞아 떨어지는 음악은 우디 앨런이 소위 말하는 찰리 채플린인 것 마냥 느껴지게 만든다. 게다가 멋드러진 흑백화면 속에 짙은 뿔테에 잔뜩찌부린 이마에 뭔가 결핍되어 있는 우디 앨런의 얼굴 표정과 그리고 몸짓 하나하나가 진지함에도 불구하고 뭔가 웃음을 유발하는 특유의 슬램스틱적 요소들이 어우러져 적어도 이 영화에서 만큼은 찰리 채플린의 무성영화가 말을 하고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 일으킨다. 물론 모던타임스의 암울한 초기 자본주의의 모습과 뉴욕의 권태로운 산업 자본주의도 서로 맞닿아 있다.


    여튼 말의 풍년 속에서 자신들이 바라보고 또 묘사하고 표현하는 것과 현실의 괴리는 극명하다. 그걸 잡아주는 것이 실재다. 아이작의 경우엔 전처인 질(진짜 앳띤 메릴 스트립 분) 자신의 주관과 위선을 건조하게 표현해주고 있고, 메리의 경우엔 실제 그의 전남편의 모습에 녹아 들어 있다. 재미있는 것은 메리의 묘사속에서 상상했던 전 남편의 모습과 너무도 다른 실제 남편의 얼굴을 본 아이작이 "사랑이 어쩌면 이리도 주관적일 수 있지?" 라며 조소하지만, 그런 자신 역시도 자신의 욕망을 철저히 자신의 말 속에 감추고 있었음을 드러내게 된다.


    니체는 일찌기 인간은 자신이 누구인지를 절대 알 수 없다는 단언했다. 우리는 우리를 전혀 이해할 수 없으며 그렇기 때문에 항상 잘못된 해석을 낳는다고 했다. 그래서 일까? 자신을, 자신의 행위를 인식할 수 없는 철학자의 고뇌를 우디 앨런은 다르게 극복하고자 한다. 그것은 '믿음'이라고.


    덧붙여. 우디 앨런의 영화에서 지성과 유머를 좀 더 빼고 거기에 우연과 위선을 강화하면 홍상수의 영화가 된다. 물론 홍상수의 일련의 영화가 우디 앨런의 오마주라고 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홍상수의 북촌을 따라가다 보면 항상  전형적인 캐릭터의 여자를 꼬시기 위한 진지함과 위선, 그리고 진부하기까지한 말의 향연 속에선 반드시 우디 앨런의 흔적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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