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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렛 미 인 (Låt den rätte komma in Let the Right One In, 2008)
    영화이야기 2012. 3. 19. 12:58
    “한 세기 공포영화 중 가장 훌륭한 영화” 라는 평가에 동의한다. 딱히 어떠한 장르에도 넣을 수 없이 독특한 이 영화는 '사랑'에 관해서도 그렇다고 생각한다.

    인간의 상상력은 끝이 없다. 상상에도 여러가지 종류가 있겠지만  그 중에서도 어떤 것을 창조하고 또 연관짓는 것은 우리 인간이 할 수 있는 능력 중 가장 멋있는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특히 연관짓는 대상이 전혀 공통점이 없을 때 발생하는 예기치 못한 상호작용은 과학은 물론 예술에서도 수많은 영감과 진보를 이끌어내는 것 같다. 

    그런 점에서 이 영화는 특출한 면이 있다. 사랑에는 언제나 갈등이 있기 마련이어서 <로미오와 줄리엣>과 같은 반목하는 집안끼리의 관계도 나타나고, 비현실적이지만 <지금 만나러 갑니다>와 같은 영화에선 죽음을 뛰어넘는 사랑도 가능해진다.

    이런 면에서 사랑에 대한 상상력은 무궁무진하다. 그러나 이 영화 속 뱀파이어는 그 결을 달리하는 점이 있다. <나라야마 부시코>와 같은 원시적 형태의 난교도, 제목을 알 수 없는 수 많은 포르노까지도 어떤 의미에선 동의할 수 있는 선 같은 것이 있다. 아무래도  같은 문화와 역사라는 공동체 속에 개연성이 있을 것이고 과장하자면 같은 염색체를 공유한다는 점이라는 인과관계 속에 있다면 이 영화 속 사랑의 대상 즉 '뱀파이어'는 딱히 이 범주에 속하기엔 다른 점이 있다.

    우리 인간의 상상력 속에서 창조되는 것들 중 아직까지 입에서 입으로 구비문학이 되고 전래되는 것은 무언가 집단적으로 동의하는 부분이 있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산신령, 삼신할매, 요정도 아닌 드라큘라나 뱀파이어같은 어두운 존재를 왜 만들었을까? 물론 인간의 죽음과 천재지변에 대한 공포를 투영하는 대상이겠지만 그 중 뱀파이어의 존재는 특이하다. 인간의 피로 연명하며 이 때문에 인간의 목을 노릴 수 밖에 없으며 이러한 과정에서 피를 빨린 인간은 뱀파이어로 전염된다.이런 손쉬운 동질화는 인간이 얼마나 나약한 존재임을 반증하는 것이며 이를 통해 자연스럽게 영생 즉 무한한 회귀는 인간의 욕망으로 치환된다.

    이러한 뱀파이어와 우리의 관계는 통상 어줍잖은 십자가나 대못에 망치를 드는 것이 고작이다. 결국 제거해야할 적인 것이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 사랑의 한 대상으로 전복된다. -틴에이저의 하이틴 로맨스인 <트와일라잇>은 논외로 하고- 이로써 선뜻 동의하기 힘든 매우 특수한 관계가 되어버린다. 이 특수함은 개인적 감수성이나 소년의 호기심으로 치부하기는 힘들다. 그저 우연이라기 보다는 척박하기 그지없는 소년 개인의 삶과 그 우울함을 강제하는 사회와 문화가 문제를 안고 있기 때문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소외당한 인간 소년은 방어기제는 그저 '사랑'

    다시 한번 우리가 뱀파이어라는 가상의 존재를 만들어 낸 이유를 강조해보자면 소외의 관점에서 인간의 모든 숙명을 초월적인 신에게 위임했듯이 반대급부로 인류가 '악'이라 규정짓는 것들이 모아 의인화된 형태가 뱀파이어라고 볼 수 있다. 아마 인간의 역사가 다할 때까지 계속 존재할 것이다. 악과 동일시되는 뱀파이어는 우리 인간을 죽이기도 하고 또 악을 전염시키며 스스로 우리의 생명을 갉아 먹게 만든다. 이런 심리학적 치환의 관점에서 볼 때, 십자가는  악을 퇴치하고 인간을 보호하는 것이 기독교적 신이라는 의미를 강조하고자 한 것으로 보인다.

    영화속 주인공 소년은 가정이라는 울타리에서 당연히 누려야할 보호와 관심을 받지 못하고 학교에서도 또래에게 집단 따돌림과 괴롭힘을 당한다. 이 불쌍한 소년에게 손을 내밀어주는 사람은 어디에도 없다. 더욱 서글픈 것은 이러한 상황은 모두 소년 자신의 의지와 전혀 관계없는 일이다. 

    조금 비약하자면 소년의 운명은 계속 진정한 친구나 스승을 만나지 못한다면 결국에는 그 반대의 어두운 면, 즉 은둔하거나 죽음에 이르거나 아니면 타인에게 범죄를 저지르거나 하게 될 수도 있다. 이런 인간 집단의 구조적 약점에 그대로 노출되어 있는 소년에게 뱀파이어는 어떤 의미가 되는가? 어쩌면 진정한 친구가 되기에 부족함이 없는 존재일 것이다. 소외받거나, 적대시되거나.

    뱀파이어 입장에서 소년과 인간을 바라보는 관점은 어떨까. 흔히 남들과 다른 행동을 하거나 논리적 개연성 없는 사고를 하는 사람들을 소위 '화성인'이라고 한다. 생각의 차이를 '화성'이라는 공간으로 환원시킨 것은 곧 인류 공동체가 공유하고 이어온 사고체계 밖을 말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뱀파이어는 화성은 커녕 명왕성에서 온 존재라고 해도 적절치 않을 것이다. 왜냐면 우리와 달리 영원한 생명을 가진 그들은  공전주기가 지구의 200배가 넘는 명왕성의 1년 세월도 찰라일 것이다.

    결국 이들은 만난다. 평생의 사랑과 찰라의 감정은 등가일 수 없겠지만 그들은 만나고 또 함께한다. 이들의 관계를 선뜻 '사랑은 그런 것'이라고 치부하기 어려운 것은 앞서 말한 여러가지 상황 논리 때문이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면 '공생'의 관계이다. 결국 사랑은 그런 것이 아닌 것이란 말이다. 그러나 이것이 사랑이다 아니다는 중요한 얘기는 아닌 것 같다.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은 주체의 문제이다. 인간 소년과 뱀파이어 소녀의 사랑의 문제는 이들이 사랑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사랑을 하지 말아야하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사랑을 갈망한다는 것이 문제이다. 

    이것은 사랑해선 안될 보스의 애인을 사랑한 <달콤한 인생>이나 치명적인 유혹에 빠져 불륜을 저지르는 <사랑과 전쟁>과는 다르다. 주체 스스로 사랑을 끓어야 하는 자기 인식을 부정한다. 특히 인간 소년의 경우 그 부정은 곧바로 자기가 속한 세계에 대한 부정이다. 반대로 뱀파이어 소녀의 입장에서는 영원한 회귀이다. 그렇다고 해서 소년의 이와 같은 사랑을 마치 니체의 '초인'처럼 권력에의 의지라고 대입시키진 말자. 

    불행하게도 또 안타깝게도 소년이 자기 종족을 자기가 사랑하는 대상의 먹을 거리로 밖에 생각하지 않게 된 것은 그만큼 자신을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다. 더욱 심각한 것은 우리 사회가 그 어린 영혼을 그렇게 괴물로 만들어 버릴 수 밖에 없었던 부조리이다. 이러한 인간세계의 욕망의 구조적는 이처럼 비극적인 사랑은 물론 실제에선 더욱 더 끔찍하고도 서글픈 전쟁이라는 폭력을 낳는다. 영화 속에 한없이 펼쳐지던 눈이 시리도록 아름다운 북유럽의 설원의 아름다움과는 별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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