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17년 전 일본 도쿄의 신흥 유흥지인 신주쿠에서 우연히 호객꾼에 이끌려 이른바 ‘라이브쇼’를 본 적이 있다. 뒷골목의 소극장이었는데 무대에는 벌거벗은 남녀가 실제 성행위를 했고 관객들은 숨을 죽이고 지켜봤다. 객석은 어두컴컴한 반면 무대엔 서포트 라이트가 집요하게 두 사람을 비췄다.
일본 신주쿠 라이브쇼의 충격
더욱 놀라운 것은 성행위가 끝난 뒤 이번엔 관객 중에서 도전할 지원자를 뽑았다. 한 중국인 남자가 용감하게 무대로 뛰어 올라가 옷을 벗어 던졌다.
충격이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호기심은 솔직히 역겨움으로 바뀌었다. ‘은밀한 공간에 두 사람만의 은밀한 행위’가 아니라 공개된 장소에서 여러 사람이 지켜보는 가운데의 성행위는 가능할 것 같지도 않았지만 어쨌든 그들은 가능했다. 그것이 바로 감정이 배제된 ‘섹스머신’이다.
최근 한 교사의 폭로로 드러난 이른바 ‘일진회’라는 학교폭력조직의 실상이 일파만파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특히 충격적인 것은 그들이 일일 락 카페를 열어 실제 성행위 이벤트를 벌이기도 했다는 내용이다.
경악의 ‘섹스머신’ 사실인가?
사실 일진회라는 조직은 이미 학교폭력의 대명사로 널리 알려져 있고 밀양 여중생 집단 성폭행 사건 등에서 보듯이 그들의 폭력성도 다 새로운 뉴스는 아니었다. 그런데도 이번에 이렇게 큰 파장을 불러일으킨 것은 바로 ‘섹스머신’이라고 하는 충격적인 이벤트 때문이었다.
이는 지난 9일 경찰청에서 열린 ‘학교폭력 예방을 위한 워크숍’에서 서울 모 중학교 교사인 정세영씨가 폭로한 내용이었다.
정말 그랬을까? 언론이 대대적으로 보도한 이 뉴스를 보면서 나는 ‘설마...’하는 의혹을 떨칠 수 없었다. 신주쿠의 악몽이 되살아났기 때문이다.
나는 그것이 어디까지가 진실인지 정확히 파악하기 위해 이 사건을 취재했던 기자와 워크숍에 참석했던 경찰 관계자 그리고 주인공인 교사를 차례로 인터뷰했다.
기자와 경찰 그리고 정 교사의 변
먼저 그 기자는 정 교사의 주장에 대해 신빙성에 상당히 의문이 들었지만 확인할 길이 없어 고민이 많았다고 했다.
그리고 경찰 관계자는 정 교사가 워크숍에서 분명히 자기도 전해들었다고 했는데 언론이 마치 기정사실인양 대서특필해 황당하다고 했다. 그는 또 한 신문에서 이를 섹스머신에 초점을 맞춰 보도하자 현장에 없었던 다른 기자들이 뒤늦게 이를 취재하는 과정에서 기사가 그 부분으로 더욱 증폭됐다고 말했다.
주인공인 정교사는 하루종일 연락이 닿지 않았다. 핸드폰은 꺼져 있었고 학교에서도 수업중이라며 바꿔주지 않았다. 다음날 아침에 다시 전화를 시도한 결과 그와 통화가 가능했다.
-먼저 이렇게 대대적으로 보도되고 있는 일진회 파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보도가 너무 선정적입니다. 일진들을 인간 쓰레기처럼 비춰지게 하고 있는데 마음이 아픕니다. 게네들을 그렇게 쓰레기로 만들어선 안됩니다. 그들은 어른들의 지도를 통해 바르게 자랄 수 있는 아이들입니다. 나의 본 의도는 그들을 선도하자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면 정말 조폭이 되기 쉽습니다.”
-섹스머신에 대해 어떻게 알게됐고 워크숍에서는 정확히 어떻게 말씀하셨는지요?
“내가 지도했던 학생으로부터 전해 들었습니다. 그 학생은 친구로부터 들었고 그 친구는 선배로부터 그리고 그 선배는 또 다른 선배에게 들었다고 했습니다.(A→B→C→D→정 교사)
그래서 내가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섹시머신’과 ‘섹스머신’이 있었습니다. 섹시머신은 야하게 춤춘다는 뜻이고 섹스머신은 성교한다는 뜻이라는 것을 그들의 질문과 답변 난을 통해 알게 됐습니다. 그 애들 사이에 그런 것이 있다는 것이죠.“
-천 여명이 모인 장소에서 공개적으로 이뤄진 그런 행위가 왜 지금껏 노출이 안됐을까요?
“참가자수는 오전 팀과 오후 팀으로 나눠지기 때문에 한꺼번에 모였다는 뜻은 아닙니다. 그런데 그중 피크타임에 섹스머신이 이뤄졌다는 것이죠. 그리고 경찰의 단속이 심해지니까 장소를 바꾸고 그랬어요. 또 한번은 내가 지도하는 학생들이 일락(일일 락카페)을 한다기에 섹스머신은 하지 말라고 했더니 나중에 선생님 말씀대로 그것은 안 했다고 연락이 왔어요. 노출안하고 은밀히 이루어 진다는 것이죠.”
-결국 섹스머신에 대해 전해들은 것이고 확실한 증거는 없다는 얘기인데...
“워크숍에서도 얘기했듯이 분명히 그 자체는 들은 것이고 나름대로 확인작업(사이트 검색)을 통해 ‘사실일 가능성이 다분하다’고 확신했습니다.
-경찰이 일진회를 해체한다는데...
“그건 해체할 수도 그리고 그럴 필요도 없습니다. 지도가 필요합니다. 굳이 얘기하자면 ‘해소’라는 용어를 쓰고 싶습니다. 지도를 통해 나쁜 행동을 조금이라도 줄여야한다는 것이죠.
그와 어렵사리 성사된 통화는 여기서 끝났다. 그의 답변은 매우 성실했다. 더 묻고 싶은 말이 많았지만 이미 9시 수업종이 울렸다며 전화를 끊어줄 것을 요청했다.
좀더 이해를 돕기 위해 그가 워크숍에서 발표했던 원고 가운데 문제의 부분을 발췌하면 다음과 같다.
1진회에서 2003년 겨울방학 중 매주 토요일, 일요일 개최한 행사인 일락(일일 락카페)을 살펴보자........(중략)
행사 중 인기가 가장 높은 이벤트는 섹스머신과 노예팅이라 한다. 남녀 1진 커플이 알몸으로 벌이는 성행위 묘사가 섹스머신이다.
2000년과 2001년 무렵 성신여대 입구에 있는 모비딕 일콜(일일 콜라텍) 때는 직접 성행위를 했으며 2002년 동대문 프레야타운, 2003년 신촌 독수리(블루몽키) 일락 때는 장소를 임대한 주인의 요구로 직접 성행위는 드물게 이뤄졌고 2004년 1월 31일 일락 때 한번 필자의 요구로 섹스머신을 중단했었다.
그런데 최근 몇 개 학교가 연합한 소규모 행사인 단합에서 섹스단합이 등장하였다.
자료만 보면 이것이 그대로 사실처럼 받아들여진다. 그러나 여기서 간과해서는 안될 중요한 것이 있다. 정 교사가 이를 설명할 때는 분명히 자신도 들은 얘기라는 간접화법을 사용했다는 사실이다.
확인 안된 ‘섹스머신’ 사실로 보도
나는 지금 언론의 선정주의적인 보도태도를 말하고 있다. 확인 안된 얘기를 사실인양 뻥튀기하기를 좋아하는 언론의 습성을 지적한다. 이는 매우 무책임한 한국 언론의 고질병 가운데 하나이다.
나는 그가 자신의 홈페이지에 공개한 일진회에 관한 각종 자료들을 통해 그의 학교폭력 근절의지를 이해할 수 있었다. 그는 한마디로 일진회의 폐해가 심각한데 교육청이나 교육부에서 이를 덮어두고 있다고 주장했다.
나는 그의 의지와 노력을 폄훼 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다만 냉정하지 못한 언론의 보도태도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폭력을 근절하자는 선한 취지에서 다소 과장된 보도를 하더라도 문제될 것이 없다는 식이라면 그것은 잘못됐다는 얘기다.
취지만 좋으면 과장보도 OK?
이는 마치 10여 년 전 개가 물에 빠진 사람을 구했다는 유명한 오보사건과 같은 맥락에서 관측된다. 아무런 피해자가 없는 미담은 좀 오버해도 괜찮다는 것이 한국언론의 관행이다.
충격적인 보도의 여파에 따라 지금 경찰과 교육당국에 비상이다. 전국 교육청장 회의가 소집됐는가하면 경찰이 일진회 해체에 나서겠다는 등 야단법석이다.
그러나 나는 이러한 살벌한 분위기는 얼마 못 가서 식고 말 것이라고 확신한다. 언론의 ‘냄비근성’이 그렇고 또 당국도 소나기만 피하면 된다는 대처방법을 잘 알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 뭔가 하는 척 만하면 된다는 것이 공직사회의 오랜 처세술이지 않은가.
그런 결과 실체가 확인되지 않은 섹스머신 파문이 오히려 섹스머신을 부추기지나 않을까 우려된다고 하면 기우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