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화의 제목처럼 마츠코의 일생은 혐오스럽지는 않다. 단 마츠코의 일생을 신문기사처럼 사실만 나열하자면 꽤나 험란한 것만은 사실이다.
일본의 한 중학교교사였던 마츠코는 절도협의로 학교에서 파면당하고, 집을 떠나 한 작가와 동거를 하게되고 그 동거남이 자살하게 되자, 그 친구인 유부남과 불륜에 빠지게 된다.
그후 그 유부남에게 버림받게되자 안마시술소, 술집 등을 전전하게 되고 마침내 살인까지 하게 된다. 교도소에서 출소를 하고 자살을 결심하고 찾아간 곳에서 한 이발사와 짧은 만남을 통해 미용기술을 배우기로 결심하게 되지만 아쿠자가 되버린 자신의 중학교 제자와 만나게 되어 다시 동거를 하게 된다. 이번에도 그 아쿠자인 제자가 자신을 떠나게 되자, 삶의 의욕을 상실하고 비만과 알콜중독에 빠지게 되나 오랜만에 해후한 친구덕분에 새 삶을 살아보기로 결심하던 밤 불의의 사고로 54세에 삶을 마감하게 된다.
영화는 이 가련한 여인 마츠코의 조카인 쇼를 통해 그의 인생을 되돌아보게 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다시 말해서 마츠코의 일생은 진정한 사랑을 찾고 또 노력했던 순수함이었던 것이다. 폭력이 난무하고 피가 얼룩진 어두운 인생의 바닥에서도 마츠코는 자신은 받아보지 못했던 사랑을 남에게 베풀고 헌신하며 마치 오즈의 마법사를 찾아가듯이 그렇게 밝게 살아보려 노력했던 사람이었다.
노희경의 유명한 글인 <지금 사랑하지 않는자>야 말로 마츠코의 인생과 사랑을 대변해주는 것이라 할 수 있겠다. 우리에게 사랑은 남에게 받는 것이 아니라 얼마나 주었느냐에 달려있다는 영화 속 대사처럼 마츠코는 어릴적 부터 병약한 누이때문에 아버지와 가족의 사랑에서 벗어나 있었던 슬픔을 간직하고 있었지만 집을 나와서는 사랑을 위해서 남을 소유하거나 속이려 하지 않았다. 적어도 한 사내에겐 '신'과 같은 존재가 되었던 것처럼 사랑을 갈망하고 추구하다가 결국은 사랑을 주기만했던 미련하고 비참한 슬프고 고된 삶을 살아간 사람이다.
끝으로 영화의 무거운 주제와 한 여인의 삶을 형식적으로 동화적이면서 블랙코메디 같은 형식을 도입하려고 했던 시도는 그다지 성공적이진 못해보였다. 시니컬하게 보기에는 마츠코라는 역할은 사랑스럽고 역동적이었으며 블랙코메디로 보기에도 그 자체의 삶이 너무 무거웠고 과정의 인과관계가 촘촘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 사랑하지 않는 자 - 노희경
지금 사랑 하지 않는 자, 모두 유죄 나는 한때 나 자신에 대한 지독한 보호본능에 시달렸다. 사랑을 할 땐 더 더욱이 그랬다. 사랑을 하면서도 나 자신이 빠져나갈 틈을 여지없이 만들었던 것이다. 가령, 죽도록 사랑한다거나, 영원히 사랑한다거 나, 미치도록 그립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내게 사랑은 쉽게 변질되는 방부제를 넣지 않은 빵과같고, 계절처럼 반드시 퇴색하며, 늙은 노인의 하루처럼 지루했다.
책임질 수 없는 말은 하지 말자. 내가 한 말에 대한 책임 때문에 올가미를 쓸 수도 있다. 가볍게 하자, 가볍게. 보고는 싶지 라고 말하 고, 지금은 사랑해라고 말하고, 변할 수도 있다고 끊임없이 상대와 내게 주입 시키자. 그래서 헤어질 땐 울고불고 말고 깔끔하게, 안녕. 나는 그게 옳은 줄 알았다. 그것이 상처받지 않고 상처주지 않는 일이라고 진정 믿었다. 그런 데, 어느 날 문득 드는 생각. 너, 그리 살아 정말 행복하느냐? 나는 행복하지 않았다.
죽도록 사랑하지 않았기 때문에 살만큼만 사랑했고, 영원 을 믿지 않았기 때문에 언제나 당장 끝이 났다. 내가 미치도록 그리워하지 않았 기 때문에, 아무도 나를 미치게 보고싶어 하지 않았고, 그래서, 나는 행복하 지 않았다.
사랑은 내가 먼저 다 주지 않으면 아무것도 주지 않았다. 버리지 않으면 채워지지 않는 물잔과 같았다. 내가 아는 한 여자, 그 여잔 매번 사랑 할 때마다 목숨을 걸었다. 처음엔 자신의 시간을 온통 그에게 내어주고, 그 다음엔 웃음을 미래를 몸을 정신을 주었다. 나는 무모하다 생각했다. 그녀가 그렇게 모든 걸 내어주고 어찌 버틸까, 염려스러웠다.
그런데, 그렇 게 저를 다 주고도 그녀는 쓰러지지 않고, 오늘도 해맑게 웃으며 연애를 한다. 나보다 충만하게. 그리고 내게 하는 말, 나를 버리니, 그가 오더라.
그녀는 자신을 버리고 사랑을 얻었는데, 나는 나를 지키느라 나이만 먹었다. 사랑하지 않는 자는 모두 유죄다. 자신에게 사랑받을 대상 하나를 유기했으니 변명의 여지가 없다. 속죄하는 기분으로 이번 겨울도 난 감옥같은 방에 갇혀, 반성문 같은 글이나 쓰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