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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6년 5.18
    각종감상문 2006. 5. 18. 11:44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시간은 점점 빨라지는 느낌이다.
    어릴 적 어르신들 말씀처럼 일년이 너무 빨라 달력 바꾸는 일이 어제일 같다. 반면에 겨울은 나이가 들면서 길게 느껴진다. 쌀쌀한 3월도 지나고 이처럼 화창한 오월은 정말 사계절이 있는 지역에서만 느낄 수 있는 축복이라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닌 것 같다.

    이런 햇살이 빛나는 오월에 26년 전 80년 광주에서 일어난 학살은 정말 말로 표현하기 힘든 참극이다. 비록 '민주화 운동'으로 자리매김했으나 아직 진상이 완전히 밝혀지지 않았다는 점과 또 온전한 처벌이 이뤄지지 않은 점에서 여전히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반대로 그러한 오월 영령들의 민중항쟁이 있었기에 우리 민중의 평화와 민주를 향한 열정이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우리의 미래는 희망이 있다고 생각한다.

    누구도 고개 들지 말라는 듯
    한 걸음도 앞으로 나갈 수 없다는 듯
    뒷덜미를 붙들던 꽃샘추위
    땅끝까지 뒤덮을 듯 매섭기만 하더니
    만 사람 하나같이 깨어서 지킨 새벽
    오늘 온 산을 뒤덮어 버린
    산벚꽃의 흰 파도를 보았는가.

    활활 타는 불길을
    눈 앞에 뻔히 두고도
    끝내 보지 못하였다고
    모르는 체 차갑게 돌려버린 등으로 가리고,
    온 하늘을 회색의 장막으로 뒤덮은
    황사 며칠 온통 가시뿐인 모랫바람
    붉어진 눈 부비며 누르며
    우리들의 발 꽁꽁 묶어도
    끝내 기다림을 버리지 않는 사람들에게
    몰아치는 한 줄기 봄바람
    어느 거친 손으로 가로막겠는가.

    누구는 광주를 속이 텅빈 유물로 만들고
    누구는 기울어 가는 기둥을 되살릴
    든든한 밑천으로 여겨
    주인에게 물어보지도 않고 내다 팔았다지만,
    변함없이 그 자리에 서서
    오직 어린 아들이 오는 새벽을
    꼬박 지키고 있는 5월의 어머니처럼
    가진 것 다 내준 그리움을 보았는가.

    누구는 먼먼 유배의 남쪽
    척박한 땅만에 떠도는 괴담으로 축소하고
    누구는 목마르고 가난한 사람들을 볼모로
    더럽혀진 금뱃지를 흥정하느라
    밤을 낮같이 밝히며 보냈다지만
    광주는 결코 돈으로 정조를 팔지 않는다.
    광주는 결코 오염된 모리배들의
    달콤한 말로 종이를 더럽히지 않는다.

    우리들의 어머니,
    제 살을 아낌없이 떼어주어
    자궁이 닫힌 땅에 다시 생명의 씨 뿌리고
    마침내 저를 아낌없이 죽여
    해맑은 봄꽃 한 송이 피우듯
    광주는 죽어서 더욱 생생하게 살아 있다.
    오늘 때 묻지 않는 꿈을
    안고 태어나는 어린아이의 눈에 살아 있다.

    죽어 있는 땅 마지막 한뼘까지 어루만져
    부드러운 흙가슴으로 풀어주는
    꽃씨가 된다 불씨가 된다.
    오직 그리움만이 양식인 5월의 어머니
    긴 밥을 밝혀 해진 무명을 깁듯
    갈라진 삼천리를 그리움으로 엮고
    어두운 한 군데 없이 훤히 비추어
    훨훨 타는 횃불이 된다.
    누구도 막을 수 없는 깨끗한 새벽이 된다.

    [제24주년 5·18 헌시] 광주는 다시 꽃이 되어 - 시인 박몽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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