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저널] 日 유행어 '가족하다'
일본 유행어에 '과학하다’는 말이 있다.
한자말로 된 명사에 '하다’를 붙이면 바로 동사가 되
는 동일한 언어 구조에도 불구하고 우리 감각에는 어
색한 말이지만 '분석적•과학적으로 탐구하다’는 뜻
으로 널리 쓰이고 있다.
최근 자주 쓰이고 있는 '가족하다'는 말은 더욱 생소하다.
1992년 아쿠다가와(芥川)상을 수상한 후지와라 도모미
(藤原智美)의 수필집 '가족을 하는 집’의 인기에 힘
입어 일상어로 쓰이기 시작한 말이다.
지난달 중순 발매 이래 약 10만부가 팔려 나간 이 책
에서 저자는 심각한 가족 붕괴의 대안은 가족을 '하
는’ 것이라고 제안하고 있다.
이런 발상은 성인 남녀가 결혼해 같이 살면 자연히 가
족이 '된다’는 생각은 더이상 통하지 않게 됐다는 진
단에서 비롯한다.
원초적 혈연 집단인 가족은 지금까지 당연한 것으로
여겨져 왔다.
훌륭한 남편이나 아버지, 좋은 아내나 어머니가 되려
는 특별한 노력이 아니었어도 부모와 아이들, 부부 사
이에는 강한 정서적 연대가 유지됐다.
이제 그런 시대는 지났다. 부모가 아이를, 아이가 부
모를 죽이는 끔찍한 사건은 가족이 저절로 '되는’ 것
이라는 환상을 깨부수고 있다.
이미 가족조차 개인에게는 타인인 시대이다. 반면 아
직도 많은 사람들은 사랑을 나누고 아이를 갖고 싶은
욕망에 젖어 있다.
또 인간이 홀로 살기 힘든 존재라는 점에서도 형태는
바뀌어도 가족의 필요성은 지속될 것이다.
이런 모순을 해결하려면 가족에게도 철학이 필요하
다. 우선 가족의 축인 부부 관계의 확립을 위해 부부
는 한방에서 잔다는 등 분명한 철학을 지녀야 한다.
따라서 남편과 아내를 '하고' 나아가 아버지.어머니
를 '한다' 는 자각.각오가 없으면 앞으로 가족을 '하
기’ 어렵다는 결론이다.
'가족하다’는 결국 심각한 일본의 가족 붕괴 현상을
반영한 말이다.
그러나 우리도 이미 '가족이란 무엇인가’라는 화두
를 마주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단순히 일본적 현상이라
고 웃어 넘길 수만은 없다.
<황영식 한국일보 도쿄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