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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복궁
    각종감상문 2006. 4. 13. 17:10
    고궁 중에서 가장 유명하고 대표적인 궁궐인 경복궁은 영화나 텔레비젼에서도 많이 나오고 개인적으로도 사생대회나 사진찍으러 혹은 전에 중앙국립박물관을 구경하러 가장 많이 가 본 고궁이다. 다른 궁궐에 비해서 매우 넓게 느껴지고 특히 요샌 지하철 3호선과 직통이 되어서 나들이 하기에 가장 좋은 궁궐이라고 생각이 든다.

    경복궁은 궁 전체 울타리가 비교적 네모 반듯한 편이고 이 울타리 동․서․남․북에 각각 하나씩의 문이 설치된 점이 다른 서울의 궁 궐에서 볼 수 없는 점이다. 다른 궁들보다 먼저 궁을 세웠기 때문에 비교적 평탄한 지형을 골라 반듯하고 질서 있는 모습으로 꾸밀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처음 궁이 세워졌을 때의 모습과는 다른 곳들이 있다. 남쪽 광화문과 그 좌우 울타리가 많이 달라졌다. 일제시대에 총독부 건물을 세우면서 건춘문 북쪽으로 옮겨갔다가 현재의 위치로 옮겨왔으나 앞 도로를 넓히기 위해 뒤편으로 물러나 있는 상태이다. 남쪽 울타리 양끝에 있던 서십자각은 철거되었으며 동십자각 까지는 울타리가 끊겨 있다. 그리고 북쪽으로 가보면 지금은 빈터만 남아있는 건청궁 왼쪽으로 철조망이 처져있는데 이 곳은 역대 왕들의 어진을 모시는 전각들이 있었던 곳이다. 지금은 군인들이 주둔하고 있다.

    어느 궁이나 공통의 공간구조인 삼문 삼조(외조, 치조, 연조)로 궁을 세웠기 때문에 경복궁도 이러한 구조와 후원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가운데 외전에 세워져 있던 건물중 정전인 근정전과 편전인 사정전 그리고 옛날 집현전 터에 세운 수정전, 수정전 뒤의 경회루가 남아있다. 내전에는 왕의 어머니인 왕대비가 거쳐하던 자경전이 잘 남아있고 왕과 왕의 침전인 강녕전과 교태전 그리고 주변의 부속건물이 '95년에 복원되어 있다. 후원에서는 별당의 일종인 함화당이 있고 그 뒤로 둥근 연못 안에 향원정이 잘 남아있다. 또 후원 제일 뒤편에는 왕실의 책을 보관하던 집옥재가 남아있다.  

    이런 건물 외에는 고종때 있던 7천 여 간의 건물들은 지금은 거의 남아있지 않다. 궁안의 넓은 장소에 몇 동의 건물만 덩그러니 있었던 것은 아니 고 주변에 궁 안에서 심부름하던 사람들이 살던 집이 있었고 큰 건물과 건물을 연결하던 행랑이나 담장이 둘러쳐져 있었다. 행랑이나 담장이 있어야 한 건물에서 다른 건물이 서로 가려질 수 있는데 옛날 사람들은 이렇게 집과 집 사이에는 행랑이나 담장을 설치해서 서로 눈에 띄지 않게 하였다

    광화문은 경복궁의 정문이다. 궁궐의 5대 정문 가운데 유일하게 궐문 형식(돌로 축대를 쌓고 그 위에 전각을 세움)을 갖추고 있고, 홍예문(무지개꼴 문)이 다. 그리고 축대 위로 2층의 큰 누각을 세웠다. 임진왜란때 불탄 것을 흥선대원군이 1865년에 다시 지었으나 1927년 일제가 근정전 앞에 총독부 건물을 들여놓으면서 건춘문 북쪽으로 옮겼고 6.25때 파괴된 것을 1968년 콘크리트로 복원되어 현재의 자리로 옮겨졌다. 그런데 현재의 위치는 원래의 자리에 서 북쪽으로 약간 물러나 있다.

    원래의 위치는 동십자각과 같은 평행선상이다. 광화문 앞 도로를 넓히는 과정에서 물러나 앉은 것이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광화문의 현재 좌향이 광화문-홍례문- 근정전을 잇는 기본 정남향 축선에서 어긋나 있다는 점이다. 당시 일제는 총독부 건물을 관악산 이 아닌 남산을 향하도록 좌향을 잡았다. 남산에 조선 황국화의 상징이었던 신궁(神宮)이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것을 미처 모르고 총독부 건물에 다 맞추어 광화문을 옮겨 앉힌 것이다. 그러다 보니 원래의 위치에서 3.5도나 삐딱하게 앉혀진 것이다. 문 앞에는 해태가 버티고 있는데 해태는 본래 불을 제압하는 짐승이라고 한다. 서울의 남쪽 멀리 있는 마치 불꽃이 일어나는 형상을 하고 있어서 그 불기운을 누르기 위해 여기에 해태를 세웠다고 한다.

    어릴적에는 영화 ‘마지막 황제’에서 본 자금성을 무척 인상 깊게 보고나서 우리나라의 궁궐들의 작음에 매우 개탄한 적이 있었다. 그 크기나 규모 등에서 비교가 많이 되었고 열등감이 느껴지기도 했었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정말 바보같은 생각이 아닐 수 없다. 중국이라는 거대한 나라와 일본이라는 야심많은 국가 사이에서 반만년 고유한 역사를 지키기 위해 그 수많은 전쟁과 시련을 다 견디어 온 우리나라의 역사와 그 궤를 같이 하는 작지만 유서깊은 궁궐들을 생각해보면 가슴 저 밑에 아려오는 민족의 한이 느껴진다.

    그전에 그러한 상징성 때문에 경복궁내에 있던 조선총독부 건물을 철거할 때도 의견이 분분했던 것으로 안다. 시내에서 조금만 신경을 써서 고궁을 가면 정말 딴 세상인 것 마냥 조용한 곳에서 상념에 빠져 산책할 수 있는 기회가 있는데도 자주 가지 못한 것을 매우 후회스럽게 여겼다. 앞으로는 우리 문화를 더욱 아껴야 하겠고 다시는 그와 같은 슬픈 역사를 되풀이 하지 않기 위해서도 후손들이 우리가 보다 열심히 그리고 강하게 나라를 부강시켜야 겠다는 사명감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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