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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의 능력주의 사랑?정경사 2019. 7. 18. 09:48
김제동 고액 강연료 화제는 능력대로 받는 것이기 때문에 (능력주의) 째째하게 볼 문제만은 아니라고 본다. 더욱이 황교안 수임료 운운하며 비교를 하는 것은 (공생관계) 비교 우위밖에 없고 니편내편을 가르는 더 절망적인 시각이라고 본다. 김제동 자신이 기부이야기를 꺼낸 것은 평소 자신이 추구하는 것과 여론과 팬을 의식한 것(민주당식 진보)이라고 생각한다.
이 이슈에서 중요한 것은 '불평등'이 문제라는 것이다. 전정권에서 블랙리스트에서 고초를 겪다가 이번 정권에서 일종의 화이트리스트가 된 것 역시 공정하거나 능력 자체만을 기준으로 삼았다고만 설명할 수 없다. 블랙리스트가 나빴다면 화이트리스트도 그보단 덜하겠지만 나쁜 작용을 한다. 김제동 개인을 욕한다기 보단 미국 진보 엘리트 전문가 집단의 영향을 아주 많이 받은 한국의 진보는 능력주의로 스스로 기만을 하거나 실제로 공정하다는 믿음이 강하다. 자신이 노력한 결과로 기회를 잡고 능력대로 대우를 받는다는 능력주의로 이 세상을 보고 있기 때문에 이들은 경제적 불평등에 대해 무관심하거나 외면해지기 쉽다.
지난 금융위기때 1%와 99% 불평등에 대해 주장하고 분노했던 것을 잊지 말아야한다. 자본주의, 능력주의 하에서 월가 CEO가 수십,수백 억원의 보상을 받을 때 그건 어떤 기준으로 가능한 것인가. 사실 명확한 근거가 없다. 어떤 능력을 갖추고 어떤 성과를 이루면 100억 원 이상을 받는 룰이 없다. 숫자가 말해주는 건 국가 전체의 파이는 커졌지만 중산층의 숫자를 그만큼 적어지고 있다는 통계 뿐이다.
하물며 방송,연예계 쪽은 어떠한가. 최근 봉준호 감독이 표준근로계약서대로 <기생충>을 찍었다는 게 화제가 될 정도로 가장 노동관계, 직장민주화가 낙후된 곳이다. 그곳과 월가에서 일어나는 미국과 한국의 불평등한 현상이 다르게 보일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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