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한자와 나오키 (半沢直樹, 2013)
    영화이야기 2013. 10. 20. 22:04


    한자와 나오키
    ★★★☆


    마크 트웨인은 일찌기 "은행은 날씨가 맑을 때 우산을 빌려줬다가 비가 오면 뺏어간다"고 했다. 나오키는 사무라이 정신으로 이를 극복할 수 있다는 아주 낭만적인 활극을 보여주고 있다. 정말 재미와 짜임새가 돋보이는 드라마이지만 사무라이 정신을 전면으로 내세워 일반적인 매조지가 안되는 느낌이다.


    한때 세계 제 1의 경제대국이란 칭송을 받으며 승승장구 했던 일본은 20여년 전 플라자합의 이후로 현재까지 계속된 불경기이다. 게다가 지난 2011년 발생했던 진도 9에 이르는 쓰나미로 더욱 더 어려운 상황이다. 당시 위기에 질서정연했던 일본인들의 모습과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는다는 문화에 따라 울지 않는 모습을 보여줬던 인상적인 기억이 있다. 그 중 항상 입버릇처럼 외치던 '감바떼(힘내라)'라는 외침도 있다.


    21세기 이후 기록적 시청률을 자랑하는 <한자와 나오키>는 아마도 이런 어마어마한 스트레스와 그것을 어떻게 극복할 것 인지에 대한 메세지가 이 드라마에 대한 열정적 관심에 담겨있는 듯 하다. 옛부터 지리적 위치때문에 지진,일, 화산 등 천재지변이 자신들의 내부의 잘못이 아닌 외부의 불가항력적 요소인 것처럼 장인 정신을 기반으로한 제조업 중심의 일본 경제가 무너진 것도 결국 외부 충격었다는 생각 (플라자 합의)이 지배적인 것 같다. 


    <한자와 나오키>는 세계 금융 위기의 주범이자 제조업 기반의 눈으로 보이는 착실한 기반의 경제를 망친 은행을 무대로 하고 있다. 미국 월가로 상징되는 금융업의 돈을 움직이고 버는 매커니즘이 자본주의의 꽃에서 이제 가장 큰 오점으로 남겨지고 있는 맥락과 일본의 전통주의가 맞닿아있다. 일본에선 돈을 빌려주고 이자를 챙기는 대금업 자체를 죄악시 하는 문화가 있다. 


    그와 반대되는 문화가 장인정신으로 대변되는 제조업이다. 다만 단순히 장인 정신의 부활을 논하는 것이 아니라 금융업을 엄격히하고 국력을 신장시켰던 일본의 전통적 체제, 즉 왕과 귀족을 지탱하고 농민을 감시하고 억압했떤 무사계급, 즉 사무라이 정신의 복원을 통해서 이를 극복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장인의 아들이면서 은행에 대해선 악을 바락바락쓰는 사무라이가 한자와다.


    좀 더 일본의 기본적인 생활방식을 통해 드라마를 들여다 보자.


    우선 효의 관점에서 아버지에 대한 복수극의 형태를 띄고 있다. 평생 품질 좋은 나사를 만드는 일에 자신을 바쳤던 아버지가 은행에 헌신짝처럼 버려지고 또 그로인해 자살을 하게 되는 비극은 한자와의 은행 개혁에 있어 더욱 극적 긴장감과 명분을 보태준다.


    일본인의 충은 우리와 달리 대단히 기능적이다. 그들의 충은 자신이 모시는 주군이나 대의를 향한 것은 일맥상통하나 자신의 체제 자체를 위협하는 수준이 되면 안된다. 일본의 왕조가 시작된 이후 한번도 역성 혁명이나 왕조가 바뀌거나 한 일이 없었던 것을 보면 충의 기능적 한계는 뚜렷하다. 따라서 마지막 장면에서 대의를 위한 한자와의 투쟁에 대한 대접은 이런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위와 같은 관점에서 나오키의 행위는 기존 계층 제도를 벗어나는 일종의 반란의 요소가 있기 때문에 그의 행동에 대한 교정이 필요했고 그것이 자회사로 좌천이었고 이 역시 그들 전통 관점에선 덕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자연스럽게 어떤 사람이 행한 행동에서 온전한 책임을 묻지 않는다. 드라마 상에선 오오다와는 상무이기 이전에 행원이며(은행장이 언급)그러기 때문에 그 자신의 부정에 대해서 스스로 책임을 지지 않는다. 이것은 전통적 충의 관점에서 한 인간을 온전한 인격체로 인정하지 않고 그저 충을 모르거나 완전히 수행하지 못했다는 점만 분명하게 제시할 뿐이다.

     

    위와 같은 관점에서 나오키의 행위는 기존 계층 제도를 벗어나는 일종의 반란의 요소가 있기 때문에 그의 행동에 대한 교정이 필요했고 그것이 자회사로 좌천이었고 이 역시 그들 전통 관점에선 세상의 덕목이라 할 수 있다.


    다시말하면, 인정은 아랫 것들의 행동 패턴이며 체제에 대한 충의 관점하에 주군의 인과 인정은 다른 것이라는 해석으로 풀이된다.

     

    그렇다면 일본인들은 한자와 나오키의 어떤 매력 때문에 이토록 열광하는가.

     

    아버지의 원수를 갚아 나가는 복수란 효의 관점과 타협하지 않는 강인한 무사 모습과 더불어 꼭 필요한 덕목인 성실성을 생명처럼 여기는 인물, 옛부터 수치에 대한 잔인한 보복, 주군에 대한 충성, 그리고 시스템을 수호하는 자세를 고루 갖추고 있는 것이 한자와 나오키란 인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통적 사무라이 문화와 조금 다른 면도 있다. 그것은 사무라이 한자와에겐 주군이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아마도 일본적 전통 속에서 새로운 주군의 탄생을 그리는 영웅담이다. 결국 일본인들의 뜨거운 반응이란 지금의 고난도 자신들의 무사도 환타지에 의해서만 극복될 수 있다는 향수를 자극했기 때문이다. 아마도 나오키가 수호하는 주군이란 일본 전통 무사도 정신 그 자체로 보이고 편리하게 그 자신이라고도 볼 수 있다. 다시말하면 한자와가 은행을 무사도 정신으로 복원하는 주군이 되거나, 혹은 그렇지 않더라도 그것은 영웅의 일시적 좌절이며 결과적으론 무사도 정신이 옳다는 메세지는 유효하게 된다.

     

    따라서 한자와 나오키는 단순한 사무라이가 아니라 새로운 주군의 모습이자 전통 무사도 자체이기 때문에 드라마 엔딩의 어처구니 없는 좌천에 대해 그다지 실망할 필요가 없다. 오히려 앞서말한대로 또 다른 명분으로 작용한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왜냐면 한자와는 지금의 은행(조직)에서 특별한 은혜를 받은 것이 없어진다. 은혜를 갚는 것이 그들이 생각하는 인간의 도리라 여기 때문에 일본의 문화상 나오키는 얽매일 게 없어 지는 셈이다.

     

    다시 성실의 뜻을 알아본다면, 그들은 정해진 정신, 틀, 일본 정신에 따르는 열정과 같은 것이다. 부연하자면 주어진 질서 안에서 열정을 불태우는 사람이다. 이말인 즉슨 단순히 개인적 판단이나 다른 사상, 체계에 대해 매진하는 사람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즉 일본의 질서의 조건과 불리해 생각하면 안되는 개념이다.

     

    은행이란 배경 역시 이 드라마에서 주요한 의미를 지닌다. 대대로 불로 소득, 이자를 통한 고리대금인 이윤추구는 전통적인 일본인들이 경멸하는 일이 었다. 반대로 농부의 노동을 포함한 제조업이 전통적인 기반이며 그 역할의 중요성은 의심할 바가 없는 것이다. 즉 드라마 속 '나사'는 일본의 전통적 관념에서 장인이며 이것이 일본을 지탱하는 정신으로 상징된다.

     

    그런 의미에서 버블 이후에 불경기와 패배감에 대한 반성 역시도 과거로 돌아가자는 의미이며,  나오키는 은행원(사무라이)으로서 벌이는 일련의 행동은  일본 제조업을 도와주지는 커녕 단물만 빨아먹는 고리 이윤만을 추구하는 은행의 병폐도 일본 전통정신으로 일본인만이 해낼 수 있는 방식이라고 여긴다. 다시 말하면 현대 일본의 제조업을 지원하는 따뜻하고 부차적인 원래의 역할로 회귀시키자는 것이다.

     

    일본 사무라이 정신은 사실 그 실체가 없으며 사상이라고 하기에는 신분 체제를 수호하는 기능적 역할에 지나지 않는다. 어떤 면에선 지배 이데올로기의 방패이기 때문에 민주적 협의와는 합치될 수가 없다. 다만 민주주의 사회에서도 회사란 민주주의 조직이 아니기 때문에 일본 사무라이 정신은 메이지유신 이후로 자본주의 체제내 회사에서 그 기능을 수행했으며 그 성과도 눈부실 정도였고 그것이 그들이 추구하는 르네상스라니 동의할 수는 없지만 약간의 일리가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씁쓸한 기분을 지울 수 없다.

    반응형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