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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 (A Single Spark, 1995)
    영화이야기 2006. 4. 13. 12:58

    95년 겨울 종로의 한 극장에서 영화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을 보았다' 그리고 몇 해전인 92년에는 돌베게에서 나온 책' 전태일 평전'을 읽었었다. 그 3년동안 얼마만한 변화가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분명 그전과 비교하여서 달라진것은 있는 듯 했다.

    지난 80년대는 구석진 지하에서 숨죽여서 읽혀졌을 이 책의 주인공 전태일이 90년대 초에는 기성서점에서 구입하여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당당히(!) 읽을 수 있게 되었고, 이제는 영화로서 정말 편안하게(?) 빛을 발하게 될 수 있게 된 것이다.

    고 조영래 씨가 골방에서 숨죽이며 대학노트에 깨알 같은 글씨로 빽빽히 써 내려갔던 전태일의 생애가 이제는 박광수 감독에 의해 제도권 영화사에서 제작되어 국민앞에 다가서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외적인 형태는 나를 감동시키기에 충분하였지만, 지금 영화를 보고난 심정은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이 영화는 이중적인 구성으로써 되어 있다. 칼라화면과 흑백화면이 그것이다. 칼라화면에서 조영래씨를 상징하는 듯한 수배중인 지식인은 이소선 여사와 만나기도 하면서 전태일에 대한 기록을 남기기 위해 힘을 쏟고 있다. 하지만 이 인물의 인상은 수배생활을 하는 운동가의 모습이라기 보다는 세상에 찌들린 권태로운 사람이 마치 소설의 소재를 찾기 위해 여기저기 방황하는 듯이 보였다. 전체적으로 이 칼라의 쪽은 분위기 자체가 늘어지고 극의 전개도 질질 끄는 듯한 인상을 받았다..

    반면에 흑백의 면인 전태일의 영상은 전체적인 분위기 자체가 압축적이고 극의 전개도 매우 빠른 편이었다. 내가 느낀 불만은 왜 칼라의 면에서 집필자의 무의미하게 느껴지던 장면을 그렇게나 길게 할애 하였느냐 하는 점이었다.

    물론 가끔씩은 영상의 교차가 자연스러운 면도 없지 않았으나, 극 전체의 흐름에는 부정적이었다는 느낌을 지우기는 힘들었다. 전태일의 씬들은 아름답고 짜임새 있는 영상이 돋보인 것이 장점이 었다고 한다면, 동시에 그 장점으로 인하여 힘이 부족한 느낌이 들었다. 너무나 영상에 치우친 나머지 그 당시의 노동현실을 제대로 그려내지 못하게 되어 결국 전태일이 분신이라는 길을 택할 수 밖에 없었던 현실을 개연성있게 설명하지 못한 것 같다.

    따라서 노동자 전태일을 충분히 보여주지 못하게 되는 맥빠진 영화가 되었던 것 같다. 또 감독의 시각은 첫 시퀀스에서 거대한 민주노총의 출범식을 보여줌으로써 강한 힘과 메시지를 암시하며 시작하였지만은, 마지막에 전태일의 분신을 마치 성직자의 순교처럼, 마치 한 개인의 희생이라고 규정짓게 보이게 만듬으로써 당시 사회적, 구조적 모순에 대한 접근이 소홀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마지막 장면에서 그 집필자가 자유롭게 90년대의 거리를 활보하면서 마주친 '전태일 평전'을 자연스럽게 손에 쥔 요즈음의 젊은이들의 모습속에 전태일을 환생을 보는 듯한 씬은, 어찌 보면 감동적인 장면이긴 했지만, 지금의 현실이 과연 완전한 민주주의 사회라는 것인지, 아니면 이정도면 전과 비교해서 더 이상 바랄게 없다는 뜻인지 모호하게만 느껴졌다. 따라서 이 장면은 매우 불쾌하기도 하였으며 또한 성급하게 느껴졌다. 물론 지금의 민주적 변화를 전혀 인정하지 않겠다는 뜻은 아니지만 과연 영화에서 처럼 그렇게 간단히 전태일이 화해 할 수 있는 이 즈음인가 하는 회의를 떨굴수 없었다.

    영화를 보고나서 극장을 나서자 어둠속에 잠긴 종로에서는 전경들과 학생들이 최루탄과 화염병을 던지며 대치하고 있었다. 순간 나는 온갖 착찹한 마음에 최루탄때문인지 아니면 다른 어떤 이유였는지 모르게 눈물이 흘렀다.

    1995/어느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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