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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트레인저 댄 픽션 (stranger than fiction, 2007)
    영화이야기 2011. 10. 24. 23:33

    작가와 평론가 그리고 소설 속 주인공이자 독자가 벌이는 소설 보다 이상한 이야기. 그러나 이 상상이 더욱 빛나는 것은 '전지적 작가 시점'보다도 위대한 '존재'의 신비를 맛보게 해준다는 것이다.

    픽션 즉 지어낸 이야기 보다도 이상한 이야기를 이 영화는 그리고 있다. 사실 이상한 것이 다 지어낸 것은 아니다. 현실 세계에서는 그보다 더 괴상망칙하고도 희안한 일들이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지어낸 것들이 다 이상한 것도 아니다. 

    이를테면 다빈치의 오랜 상상력이 비행기를 만드는 것에 영향을 준 것은 긍정적인 면이라면, 있지도 않은 대량살상 무기를 핑계로 수십만 이라크인들이 살상된 것은 지극히 어두운 면일 것이다. 

    어쨌든 소설 보다도 이상한 이 이야기는 우연을 매개로한 연관성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리고 소설과 인간에 대해 뒤집어 생각하는 발상에 대한 이야기이다. 여기에서 하나 이상한 것은 이것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버리려고 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과 그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학자와 그렇지 않다는 소설가가 있다는 것이다. 

    결과부터 올라가서 정리해보자면 어떤 소설가가 자신의 소설의 결말을 바꾼다. 지극히 평범한 사람의 일상을 지독한 우울함으로 밀어넣다가 결국 자신의 목숨을 끊는 스토리에 천착한 히스테리컬한 여류작가가 있다. 소설에선 이야기를 만들고 활자로 생산하는 사람이 주도권을 쥐기도 하지만 반면에 독자들의 반응이나 평판 역시도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소위 평론가라고 하는 공인 마크를 찍어주는 평론가의 역할의 중요성도 빼놓을 수는 없다. 

     사실 소설이라는 것은 작가 스스로도 그렇지만 독자에게도 꽤나 안전한 세계이다. 그러나 만약 소설가와 평론가 그리고 독자의 관계가 전치되거나 뒤틀려 버리면 어떻게 될까? 즉 영화에서는 독자가 곧 소설이 된다. 신의 장난인지 우연인지 소설가가 쓰고 있는 소설의 주인공이 실재하는 것이며, 소설가가 쓰는 대로 실재의 그의 삶이 좌지우지 된다. 바로 '전지적 작가시점!' 어찌보면 기법상 전혀 이상할 것 없는 현상이지만!

    결국 자신의 작가정신대로 주인공을 어떻게 죽일까만 고심하던 작가는 자신의 펜끝에 따라 실제로 죽을 수도 살 수도 있는 실재하는 소설 속 주인공의 전지적 시점에서 흔들리게 된다. 반면 소설 그 자체였던 주인공은 미완성인 소설가의 소설을 읽어내려가는 '독자'가 되어 독자의 입장에서 소설가의 새드엔딩을 지지하게 된다. 그래서 결국 소설가에게 말한다. '자신이 죽어야 맞겠다' 고. 소설에 따라서 말이다. 

    게다가 평론가는 작가의 소위 작가주의를 견지할 것을 강건한다.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사망원인이 노벨 문학상을 거머쥐는 인류의 걸작이 된다면서 냉철하게 소설을 마무리할 것을 지지하고 있다.

    소설가와 독자 그리고 평론가를 입체적으로 그려나가는 이 흥미진진한 구도 속에서 작가는 결국 사람을 주시한다. 어찌보면 처음부터 비현실적인 영화에서 가장 현실적인 결말인 것으로 쉽게 '결국 해피엔딩!'이라고 할 수는 있겠지만, 아래 인용한 작가 스스로가 말해주는 해피엔딩의 이유를 듣고 있노라면 결국 '존재'라는 것이 그리고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연관되어 있다는 진리가 아주 작고 평범한 일상 속에 숨어 있음을 깨닫게 해준다.

     

     

    그게 아니고, 왜 이야기를 바꾼거죠?
    이유야 많죠.
    이러면 안된다는 걸 깨달았어요.
    그가 진짜라서요?
    처음엔 자기가 죽는다는걸
    모르는 남자에 관한 책이었는데
    그 남자가 자기가 죽는걸 알게 되고, 자기가
    그걸 막을 수 있는데도 기꺼이 죽겠다는 남자라면
    당신이라도 그런 남자를 살리고 싶지 않겠어요?

    해롤드가 쿠키를 한입 깨물자
    그는 만사가 잘 풀리리란 걸  느꼈다.

    가끔씩 우리가 두려움과 절망
    어찌할 수 없는 비극적 일상에서
    용기를 잃어 갈 때
    그 쿠키 맛을 신께 감사할 수 있을 것이다.
    다행히도, 쿠키가 없다면
    가족들의 손길이 쿠키를 대신할 수 있다.
    또는 친절하고 사랑스런 행동이나...
    자그마한 격려나...
    사랑스런 포옹
    위안도 마찬가지다.

    병원의 환자수송 침대는 말할 것도 없고.
    코마개도
    노숙인도
    가벼운 비밀도
    펜더 스트라토캐스터 기타도 그렇다.

    그리고 마무리 덜 된 소설도 해당될지 모르겠다.
    사람들은 이 모든 것들을 기억해야 한다.
    우린 뉘앙스, 비일상성, 미묘함같은 건
    일상속의 작은 부분에 지나지 않는다고 여기지만
    사실은, 보다 크고 고결한 원인으로 존재한다.
    우리의 생명을 구하기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이런 생각이 이상하게 느껴진다는 걸 나도 안다.
    하지만 이런 일이 자주 발생하며 사실로 판명되고 있다.
    이 책에서도 그랬다.

    손목시계가 해롤드 크릭을 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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