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배가 고파서 중국집에 가서 자장면을 시켜먹었었을 때 포만감과 같은 기쁨을 경제학에선 효용이라고 한다. 이런 효용의 개념을 통해 경제학에서는 인간이 소비를 통해 얻어지는 만족감을 수치적 지표로써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객관적 지표가 필요할 때도 있다. 사실 ‘필요할 때도 있다’는 말은 보완적인 의미일 지도 모른다. 무엇에 대한 보완인가하면 원래의 진실이나 세상살이는 학문으로는 증명할 수 없는 것들이 많기 때문에 참고할만한 자료로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이다. 과학에서도 자연과학보다는 인문과학쪽이 더욱 그러한 경향이 있다.
사실 과학에서 자연과학과 인문과학은 서로 배타적인 독립적 영역은 아니다. 사회과학에서도 자연과학의 데이타와 연구의 뒷받침이 반드시 필요하다.
여튼 효용에 대한 생각을 하던 중 영화 매트릭스를 떠올렸는데, 거대한 컴퓨터와 네트웍 속에서 인간을 가두었던 그 시스템이 결국 리셋하게 되는 것은 인간의 욕구 즉 일종의 효용을 완벽하게 콘트롤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맥빠지게 영화 속에서 '그'였던 네오는 6번째의 리셋후에 나타난 구원자라는 것이다. 내 생각에는 인간의 효용도 미시적인 관점에서는 수량화시킬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를테면 인간의 감정이나 욕구 역시 수조, 수경의 단위로 나누고 또 하드디스크의 저장단위인 테라의 수조 아니면 수경배의 달하는 용량이 있고 또 그것을 연산할 수 있다면 매트릭스의 완벽한 시스템은 작동할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예를들어 커피를 마실 때 분말이 원소수가 어제보다 2천개가 적었을 때 내가 마실때의 맛이 내 마음 속의 위치에 어떤 단위로써23,413,123,414,124,532,512,553,125,125,432,125,541,512,512,512,512,512,512,512,512,511,512,512,515,234,124,123,241째를 차지할 수 있지 않겠는가 하고 말이다.
뱀발) 다쓰고 보니 마치 6시그마 법칙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