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6년 칠월 상순에 전북 순창으로 농활을 다녀왔다..
마지막날 해단식을 마치고, 우리학교와 이웃의 서울여대는 내장산으로
평가 수련회를 하러 길을 나섰지만, 나는 해단식만 끝내고 나혼자 순창군
의 버스 터미널로 발걸음을 옮겼다..
순창군내에는 기차역이 없기 때문에, 평소에 버스 타는 것을 무지 싫어하는
나이기 때문에 가까운 기차역이 있는 남원행 버스를 타려고 생각하고 있었
는데, 터미널에 때마침 광주행 버스가 있었다. 그 버스를 보자 갑자기 광주
에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나도 모르게 1800짜리 버스표를 와~ 싸다
라는 생각과 함께 부랴부랴 끊고 그 버스에 올라섰다.
광주에 대한 외경심과 어떤 성스러움을 항상 느끼던 나였지만, 이제껏 광주
를 가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급작스러운 결정이라 더더욱이 마음이 설레였
다. 전북 순창에서 출발한 버스는 꼬불꼬불한 국도를 지나서 전라남도에 도
달했다. 이제껏 전라남도에 가본적이 없는 나였기에, ' 여기서 부터 전남입
니다' 라는 푯말에 묘한 기분이 들었다..
동광주 톨게이트에 닿자, " 아..여기가 광주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갑작스럽다는 생각과 함께 광주의 모습을 버스안에서 보았다..무등산 표지
가 나오고, 5.18광주 묘역 표지가 나오고, 전남대를 지나고, 금남로가 교통
표지판에 나오고... 평소에 잘 감동하고, 하물며 티브이에 나오는 흔히 말
하는 삼류 드라마에도 눈물을 잘 흘리는 감정이 헤픈 나이지만, 책에서만
보았던 그 지명들이 눈앞에 다가서자 상당히 긴장도 되고, 묘한 기분이 들
었다..
광주시는 생각보다 컸고, 시내를 가로질러 버스 터미널에 다다랐다..
거기에 내려서, 광주에 내렸다.. 가보고 싶은 데는 많았지만, 주머니속에
돈이라고는 딸랑 차비 뿐이여서, 그 터미날 앞에 있는 신세계 백화점앞에서
담배를 피우면서 이런저런 생각에 잠겼었다.. 주위에서 들리는 전라도 사투
리는 나의 현위치를 깨우쳐 주면서, 나는 괜히 긴장하고, 바보처럼 멍하니
서있다가 주위 분들한테 광주역이 어딘지를 물었다..뭐라고 설명을 해주시
는데 잘 알아듣지도 못하면서 '네..네..' 하고 대답을하고, 그러다가 문득
생각이 났다.. 수첩을 꺼내서 들고, 군대에 있을때 알던 광주사는 후임병이
생각이 나서 전화를 돌렸다..마침 집에 있어서, 통화를 했더니 거기서 가
까운 곳에 있는 아파트에 산다고 택시를 타면 기본 요금정도만 나온다고
군에 있을때보다 훨씬 더 심해진 사투리를 쓰면서 일러 주었다..
반가운 마음에 택시를 잡아서 일러준 아파트 이름을 대면서, 그곳을 떠났다
. 그냥 들뜨고 좀 경직된 기분을 풀려고, 택시 기사님한테..
" 저 오늘 광주 처음 왔거든요.."
" 아, 네.."
" 광주가 생각 보다 참 크네요.."
" 별로 큰 편은 아닌디..참, 서울 분이신가 보죠?"
" 네, 서울에서 순창으로 농활왔다가 들렸어요.."
" 아까, 택시 잡을때 알아봤지요, 여기 광주사람들은 학생처럼 타기전에 밖
에서 어디 가자고 안 물어보거든요.. 무조건 타고 어디 갑시다 이러지.."
" 아,네.."
이런 정도로 얘기하면서 오다 보니깐 금방 행선지에 도착했다..
후임병은 나를 반갑게 맞아주었고, 군에 있을때 까불까불 하던 친구가 아주
점잖아 졌다.. 밥을 사주고, 역까지 자기 어머니 차로 바래다 주고, 암튼
융숭한 대접을 받고, 광주역에서 서울행 무궁화호 열차를 끊었다..
후임병과 작별인사를 하고, 서울로 올라오는 기차를 타면서 너무나 아쉽고
너무나 보고싶은게 많아서, 허전한 기분을 떨칠 수가 없었다..
생각 같아선 후임병네 집에서 하루 신세라도 지고 싶은 마음이였지만,
그건 너무 미안한거 같았고, 암튼 떠나는 마음이 그야말로 착잡했다..
나의 첫 광주방문이 급작스럽고, 정신이 없었지만, 언젠가 다시 오리라는
생각에 서울행 무궁화호 기차에 몸을 실었다..
1996년 7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