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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심야의 FM (Midnight F.M., 2010)
    영화이야기 2010. 11. 1. 01:10
    참으로 올드하면서도 그로 인해 뜻하지 않게 소통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영화

    만약에 내가 정말 괜찮은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을 때, 스릴러라는 장르에서 어떤식으로 영화를 만들어야 할까.

     낚시를 하다가 우연히 물고기를 잡았다 치자. 회로만 먹기에는 뭔가 아쉽다. 갑작스레 준비없는 와중에 매운탕은 대충 라면 국물 속에서 마무리되곤 한다. 라면 국물에 생선이 끊게되면서 그래도 명색이 매운탕인데 하는 생각이 들면 파도 더 넣게 되고, 후추도, 고춧가루도 더 넣게 될 때가 있다. 물론 이렇게 마무리까지 되면 좀 더 포만감을 느낄 수도 있다.

    <헤피엔드>, <걸스카우트>처럼 장르에 구애받지 않고 철저히 평범하지 않은 소재를 가지고 영화를 만들어온 김상만 감독이 잡은 생선은 '존 힝클리'이다. <택시드라이버>를 존 힝클리는 실제로 레이건을 암살하기 위해 총 6발의 방아쇠를 당겼다. -자신이 연모했던 조디 포스터의 관심을 끌기 위해서.-

    당시의 사건을 보자면, 『조디 포스터가 거리의 10대 창녀로 나온 영화 <택시드라이버>가 나온 건 1976년이다. 힝클리는 영화를 본 후 그녀에게 사로잡힌다. 조디 포스터가 예일대학에 진학하자 그녀에게 더 쉽게 접근하기위해 예일대학이 있는 코네티컷, 뉴헤이븐으로 아예 이사를 간다. 편지도 보내고 전화도 걸고 하지만 포스터의 주목을 받지 못하자, 영화 <택시드라이버>의 주인공이 대통령을 저격하려고 했던 것처럼 대통령을 저격해야겠다고 마음먹는다. 한 때는 여객기를 납치하는 것도 생각했다고 한다.』 [김상철 칼럼]존 힝클리의 오늘 

    MBC 특파원인 김상철 기자의 칼럼에서 소개된 대로  마틴 스콜세지의 '택시 드라이버'와 조디포스터와 연관이 된 끔찍한 사건이 있었다. 김상만 감독이 잡은 싱싱한 물고기는 아마도 이 사건이 아닐까 싶다.좀 더 정확히는 <택시 드라이버>가 모티브가 된다. 영화 속에서도 <택시 드라이버>와의 연관을 숨기지 않는다. 그러나 이 소재만을 가지고 연쇄 살인마와 미모의 아나운서 DJ의 스릴러에 집중하기에는 뭔가 성에 차지 않았나 보다.

    영화에 스릴러에서 서스펜스를 가미한 것까지는 좋다. 거기에 반전 비슷한 미스터리를 가미하더니, 나중에선 천사와 악마를 대입하여 계몽영화스런 면모까지 갖추게 된다. 멜러까지 없던게 그나마 다행이다.

    갑작스렇게 등장한 사이코 연쇄 살인마가 고선영(수애 분)의 집에 침입하여 그의 동생을 인질로 삼아, 마지막 방송을 하는 DJ를 협박해 방송을 진행하는 초반부는 그야말로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연출이 돋보인다. 화상전화기를 통해 동생을 협박하면서 마치 퀴즈처럼 자신이 원하는 노래를 틀 것을 강요하는 장면에서는 주인공 선영와 관객은 동일한 감정을 느끼게 된다. 이를 알 턱이 없는 작가나 PD들의 행동을 보면 답답하기 그지 없다. 이것이야 말로 서스펜스의 훌륭한 전형이다.

    서스펜스의 시간이 지나 '왜 동수가 연쇄 살인마'가 되었나 하는 부분이 중반이다. 마치 택시 드라이버 처럼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보호와 관심으로 살인까지 자행되는 과정은 미스터리 기법으로 전개해간다. 마치 퍼즐처럼 딱딱 맞아 들어가는 살인의 동인은 수학공식적이다. 다시말하자면 캐릭터의 힘은 없어진다. <양들의 침묵>과 비교해보자면 선영과 동수의 관계는 스탈링과 한니발 랙터의 관계가 아니라 스탈링과 텍사스 연쇄 살인마의 관계일 뿐이다.

    이런 전형성이 이 영화가 좀 더 개성있고 독창적인 차원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이유일 것이다. 이 영화의 캐릭터는 입체적이지 못하며, 결국 화면에서 보이는 것 외에 상념의 공간은 없다. 여운이 없는 이런 등장인물은 결국 수애는 모성애를 지닌 강한 엄마이며, 동수는 정상 참작의 여지가 없는 지능적 사이코패스 일뿐이다. 또다른 축의 스토커 덕태는 서번트 증후군을 지닌 것 같은 수호천사이다.

    그렇지만 인간사이의 관계가 모든 사건의 연관이 된다는 점은 시사하는 점이 있다. <택시 드라이버>속에서 사회의 쓰레기를 처단하는 트래비스를 영웅으로 묘사하는 등 DJ의 멘트때문에 결국 살인의 동기가 되는 설정은 극단적이긴 하지만 개연성을 지니게 된다. 다만 영화속에선 이런 연관이 '나와 당신의 관계'가 아니라 '개인의 성향'으로 치부된다. 달리말하면 거의 비슷한 처지의 스토커면서 천사와 같은 덕태와 악마인 동수는 결국 개인의 책임이라는 결과가 도출된다.

    이런 세계관에선 결국 라디오 DJ의 말이 갖는 무서운 힘에 대한 책임은 면제된다. 물론 DJ의 멘트는 크게 문제될 것이 없지만, 영화 속에서는 덕태와 동수를 통해 증명을 하며 결국에는 방송에서 살인장면이 그대로 생중계되는 장면에 까지 이르게 된다. 청소년과 시민이라는 불특정다수에게 방영된 동수의 목소리와 살인미수의 장면이 전파를 탈 때, 마치 이 세상의 모두가 선영을 응원하는 양상이 된다.

    이를 통해 또다른 상처를 받는다던가 하는 일은 마치 쓰레기처럼 선영의 차를 공격하는 폭주족처럼 규정되어 버린다. 결국 이 영화는 오락물이며, 전형적인 헐리웃 스릴러를 답습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헐리웃 영화가 이분법적인 세계관을 담고 있다고 해서 이를 비판하고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이 영화가 가진 세계관도 그와 같다는 것이다. 잘만들어진 스릴러를 볼 때면 <살인의 추억>같은 우리 정서와 독창성이 묻어나면 더 좋지 않았을 까 하는 아쉬움을 보태는 차원이다.

    그렇지만 이 영화의 미덕은 그것을 애써 포장하거나 숨기려 하진 않는다는 점에 있다. 마치 표절을 하고나서 애써 번역문이 아닌 것처럼 윤색을 하는 비루함은 없다. 오히려 <택시 드라이버>에서 가져온 아이디어를 헐리웃의 문법에 충실하게 만든 영화임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듯하다. 우리 수준이 이정도로 올라있다는 자부심처럼 말이다.

    내가 동의할 없는 아쉬움과 별개로 잘만든 이 오락영화는 마지막에 독백처럼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낸다. 수애의 입을 통해서 "지옥에나 가버려"라고. 사실은 이 대사가 전혀 어색하지 않은 것이 영어몰입 교육을 천명한 우리나라의 세태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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