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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주 (Paju, 2009)
    영화이야기 2010. 1. 26. 22:48

    부인 살해 후 처제와 내연관계? 인면수심의 피의자 체포.

    「 지난 00일 경기도 파주시에서 보험금을 타내려 가스폭발을 위장해 부인을 살해한 혐의로  김모 씨(38세, 무직)가 체포됐다. 김모 씨의 체포에는 살해된 부인의 여동생의 제보가 결정적인 단서가 되었다. 최근 해외로 장기 여행을 떠났다가 돌아온 여동생 최모 씨는 평소 언니가 교통사고로 죽었다고 주장한 형부 김 모씨의 말과는 달리 사인이 가스폭발이라는 점과 동네 주민들을 통해 보험금 수령에 대한 이야기를 듣자 이를 수상히 여겨 보험조사관에게 재수사를 의뢰한 것으로 알려졌다.

    더욱이 사건 당사자인 피의자 김모 씨와 처제인 최 모씨가 평소 내연의 관계였다고 알려져 주변사람들에게 더욱 더 큰 충격을 안겨주고 있다. 」

    만약 영화의 주인공 중식과 은모가 자신들의 이야기에 대해 위와 같이 써진 기사를 본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

    어쩌면 영화의 줄거리를 그저 조서나 탐문으로 대하는 경찰의 시각으로 혹은 제 3자의 입장에서는 그저 이처럼 선정적인 기사로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영화를 본 사람들은 이렇게 사실과 판이하게 왜곡된 기사가 쓰일 수 있을까 할 것이다. 연예인들이 흔히 토로하는 억울함은 물론, 심지어 폭력적이기 까지 하다.

    하지만, 영화 역시도 이런 오해와 사실 사이의 모호한 선을 즐기려는 듯하다. 적어도  주인공 중식은 크게 억울해 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는 정확한 내면을 알 수 없는 인물일 뿐더러 그다지 신비롭거나 진중해 보이는 사람이라 할 수도 없다. 오히려 그의 감정은 관객 누구도 신뢰할 수 없을 정도로 자기 중심적인 면이 크다. 영화 시작에서 나오는 중식의 과거의 상처에 대한 설명은 자신의 첫사랑과 격정적인 정사를 나누던 중  여인의 아이를 방치하다 뜨거운 물에 화상을 입는 것으로 되어 있다. 두 사람의 관계는 옥바라지 하고 있는 유부녀와의 불륜이요, 장소는 그의 아이가 살고 있는 집이었던 것이다. 가정을 하자면 그날 사고가 없었다면, 중식은 어떤 자책도 없었을 것이오, 그가 파주로 내려가는 일 따윈 없었을 것이다.


    여하튼 그는 도망치듯 파주로 떠난다. 신학교를 다니던 그는 파주에서 목회활동을 하는 선배의 교회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을 하게 된다. 그는 학생들에게 첫사랑 이야기를 할 때 어느 선생님도 묘사할 것 같지 않은 끈적이는 표현을 구사하더니, 교회를 맡아달라는 선배목사의 말에는 술에 취해 울먹이며 고사를 한다. 이렇듯 자기와 자기 밖의 영역과 자신 안에 상처를 바라보는 시선은 판이하게 다른 경계선을 긋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자신을 조건없이 따르는 은수의 사랑을 받아들이지만, 결국 그의 결혼 생활을 엿보면 얼마나 은수의 사랑을 값싸게 혹은 수동적인 차원에서 행동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다. 자신에 대한 연민만큼 타인의 삶을 생각했다면 그렇게 해서는 안될 일을 말이다.

    게다가 은수가 죽고나서 오랜만에 다시 돌아온 은모가 "언니를 사랑했었나요?" 라는 질문을 하자"아니.."라고 답하더니 "그럼 나는요?"라는 은모의 질문에 "처음부터 사랑하지 않은 적이 없었어"라고 답하고 나자마자 성급하게 스킨십을 해댄다. 과거의 첫사랑과 있었던 상처때문에 거기에 얽매어 자책하거나, 은수에게 심드렁대다가, 내내 그 심드렁함이 깊게 패인 시민운동을 하던 중식은 이때서야 눈을 반짝인다. 그저 한숨자러 은모의 방을 찾았던 그 의기소침한 눈빛은 간데없이.

    아마도 그 동력은 첫사랑 선배가 찾아와 화상을 입었던 아이가 아무 탈없이 회복했다는 소식 때문이리라.

    사실 이 영화의 백미는 마지막까지  은모를 보호하려는 중식의 침묵이다. 가볍게 스쿠터를 타고 파주를 떠나는 은모의 뒷길에선 확실히 중식의 희생이 있다. 중식에 대한 오해가 스스로 풀리는 과정에선 가볍지 않은 반전마저 있지만, 파주의 온 공간을,  모든 이야기를 휘감는 인물인 중식 자체에 동조하지 못함으로 인해 은모와의 사랑에도 고개를 선뜻 끄덕일 수가 없게 된다.

    사실 어떤 면에서 이 영화는 무지막지한 환타지이다. 은모가 포크레인이 동원되어 물대포가 쏘아지고, 낙석의 파편이 여기저기 날리는 아수라장 같은 재개발 현장에서 마치 그 난장판의 모든 것이 시간이 멈춰 버린 것 같이 한번의 쉼없이 중식에게 올라가는 장면은 거의 기적에 가깝다.

    재벌 2,3세가 난무하는 신데렐라 연애 이야기와는 절대적으로 비할바는 아니지만, 영화 내내 계속 척박한 우리들의 삶이다. 상처를 입은 남자의 순수한 사랑이다. 가려린 영혼을 지닌 소녀의 애정이다. 라고 운동권과 철거민과 철거현장 그리고 파주가 등장하지만 어쩐지 동감하기 쉽지 않은 건 그 기적 같은 장면만큼이나 현실이 아닌 제멋대로인 환타지였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파주는 파주일 뿐 오해하진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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