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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잘 알지도 못하면서 (Like You Know It All, 2008)
    영화이야기 2009. 7. 2. 13:11
    "감독님, 그런 영화 왜 만드세요?"

    홍상수는 '잘 알지도 못하면서'를 통해서 그동안 보여줬던 균형이나 경계를 허무는 듯해 보인다. 그렇다고 해서 명확하게 자신을 드러내지도 않는다. 오히려 그 반대다. 철저하게 모호해지기로 작정한 듯이 영화를 찍었다.

    홍상수는 이번 영화의 주인공인 구경남(김태우)이 자기 자신의 분신임을 숨기지 않는다. 구경남은 극중에서 나름 인지도 있는 영화감독이지만 비주류이다. 그는 마치 주변에서  실제로 들을법한 감독 홍상수에 대한 평가와 비아냥을 영화 속에서 맞닥들인다 '그런 영화를 왜 찍으세요?'라는.
    무기력해보였던 구경남이 한껏 목청을 높혀 항변을 하지만 그다지 확신에 차있지도 않거니와 뾰족한 답을 낼 생각도 없어 보인다. 이런 모습을 통해서 홍상수는 자신의 작품세계를 변호하는 것도 아닌 그렇다고 해서 의도적으로관객을 비웃으려하는 것으로 생각되지 않는다.

    너도 나를, 나도 나를 '잘 알지도 못하면서'

    다만 '잘 알지도 못하면서'가 관객들을 향해있으면서 동시에 자신 자신을 향해있기도 하다. 지사와 같은 굳은 신념이 있지 않은 것이 비난의 대상이 될 순 없지 않는가? 기실 열길 물 속은 알아도 한길 사람 속은 모른다던데, 남들은 커녕 내 자신도 내가 모르겠는데 무엇에 목청을 높이고 정답이라고 제시하고 자신의 생각을 남에게 드러낼 수 있겠는가 하는 자조에 차라리 가까워 보인다.

    그러나 홍상수는 심각하진 않다. 마치 심각하면 진다라는 신념이라도 있는 것처럼 뜻을 세우는 것 조차도 부질없다는 듯이 그냥 사는 게 이렇다. 적어도 나는 이렇게 산다라는 듯한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이번에 그는 주관성에 중점을 둔다. <강원도의 힘>에서는 지숙과 상권의 강원도 여행길이 각각 독립적인 객관성이 있었다면, <잘 알지도 못하면서>는 영화의 거의 대부분을 자신의 주관적인 시각만을 보여주고 있다.

    잠시 영화의 줄거리를 보자. 어느정도 입지를 구축한 구경남이란 감독은 흥행하고는 거리가 먼 비주류 감독이다. 그는 제천에서 열리는 한 영화제에 심사위원으로 왔다가 여러 영화와 관련한 사람들을 만나고 술을 마시고  봉변을 당하기도 한다.

    다시 그는 제주에서 선배가 주선한 자신의 영화와 관련한 강연을 하러 왔다가 평소 존경하던 대선배를 만나고 술을 마시고 봉변을 당한다.

    영원한 반복 그리고 계속되는 기억의 왜곡

    제천과 제주에서 보여지는 그의 모든 행동들과 만나는 사람들에 대한 것은 모두 구경남의 주관적인 관점이다. 하다못해 자신이 예전 영화후배  부상용(공형진)과 그의 처(정유미)를 만나서 그가 마치 후배의 처를 겁탈한 파렴치한으로 몰리는 지에 대해서도 객관적인 정황을 보여주지 않는다. 꿈인지 생시인지 아니면 사차원인 후배의 처의 과대망상인지 어느 것 하나도 명확하지가 않다.

    게다가 히스테릭한 영화제 프로그래머인 공현희(엄지원)이 자원봉사자들에게 술한잔 사겠다는 인사치레를 두고 그렇게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고, 술취한 자신을 다른 남자 감독의 방에 두고 가서 강간을 당했다고 광분하며 온갖 욕설을 퍼붇는 것에 대해서도 그다지 객관적으로 보이진 않는다. 다시말해서 마치 구경남의 입을 통해서 전해들은 자신의 경험담을 그냥 스크린으로 재현했다고 보는 편이 맞을 것이다. 하다못해 영화 속에서 등장인물들이 하는 대사들조차도 외화 더빙처럼 어색하다. 욕할때만 빼곤 말이다.

    그렇다고 해서 홍상수는 봉준호의 <마더>처럼 철저한 주관성으로 관객과 영화 자체의 객관성마저도 속이지는 않는다. 구경남은 오히려 현실에 굳건히 발을 딛고 있다. 그는 영화제에서 그들과 분명히 술을 마셨고, 팔씨름을 했으며, 후배한테 돌을 맞았다. 그리고 제주에서는 강연회를 했으며 그들과 술을 마셨고, 대선배의 아내이자 자신의 후배였던 고순(고현정)과 섹스를 했으며, 동네 주민에게 들켜서 도망쳤었다.

    오히려 그는 자신에게 뜬금없이 팔씨름을 제안했던 학생들에게 영향을 받아서 고순에 대한 치기어린 행동으로 그의 남편인 노회한 양선배에게 팔씸을 하자는 당돌한 행동을 하기도 한다. 그 덕분에 무안해진 고순의 날카로운 반응 역시도 현실적이다. 따라서 더 정확히 말하자면 자신의 시각으로 바라본 주관성은 그다지 철저하지도 않다는 것이다. 다만 그 순간의 대사와 상황을 설명하는 데 있어서의 경험과 기억의 왜곡일 뿐이라는 태도이다.

    짝이란 결국 내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비빌 언덕

    그래서 '잘 알지도 못하면서'라는 현실과 경험의 왜곡에서 나오는 개념이 '짝'이다. 마치 종교를 믿어버리는 인간의 심리처럼 자기 자신에게조차 소외받는 주관성에 대한 답답함을 타인에게 전가시키려는 것이 '짝'이다. 마치 인간이 자신의 짝을 만나야만 구원받는다는 것 마냥 말이다. 그래서 부상용은 그토록 짝을 칭송해마지 않았고, 공현희는 자신의 불행을 남의 탓으로만 돌리려 한다. 급기야 구경남은 자신의 불륜조차도 어설프게 '짝'을 만났기 때문이라고 합리화하는지도 모른다.

    그동안 지식인의 허위의식에 대한 블랙코메디 혹은 풍자의 다큐멘터리로 작품의 일가를 이뤘던 홍상수였다면, 이번 작품에서는 인간은 모두다 파편적이고 자기중심적이고 대상을 왜곡하는 허약한 족속이라는 성찰을 보여줬다고 할 수 있다. 길고 긴 인생 속에서 영화 속에서 나오는 골때리는 인간이나 상황을 맞이하는 경우가 가끔있다. 다만 홍상수는 그것이 영화이니깐, 2시간안에 그토록 집약적으로 다발적으로 나열하는 것이라는 듯하다. 그러므로 그것이 비교적 기억과 경험의 왜곡일 수도 있겠지만 현실적으로 타당성이 있다는 것만은 놓지 않는다.

    솔직히 그런 사람과 일들은 실재하고 있다. 다만 홍상수가 한편으로는 솔직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얼마나 솔직한지에 대해 알 수가 없을 뿐이지만, 그것은 크게 문제되진 않을 것이다. 왜냐면 그 만큼이나 자기 자신에게 솔직한 사람또한 우리나라 영화 혹은 세계의 영화계에 없을 것 같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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