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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더 ( Mother, 2009)
    영화이야기 2009. 6. 1. 02:38
    ※ 이 글에는 치명적인(!)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김혜자도 원빈도 묻혀버린 봉준호의 영화

    이 영화는 봉준호의 영화이다. 이영화를 이루고 있는 다른 어떠한 강렬한 요소도 봉준호 감독이란 이름에 묻혀버린다. 이를테면 대통령만큼이나 전국민이 알고 있는 대배우 '김혜자' 역시도 희석된다. 젊은 층에게 인기가 많은 원빈 역시도 마찬가지이다.

    그것을 알기 때문에 많은 비평가와 관람객들이 신경을 곤두세우고 긴장하면서 대사 하나 씬 하나하나에 집중하는 현상이 일어나는 것이다. 봉준호의 영화는 그렇게 묘한 영화외적인 반응들을 발생시키는 열린(!) 영화내부적 구조가 있다.

    그렇다면 80년대 일어났던 화성 연쇄 살인이나 심지어 고질라 류에서나 어울릴 것 같은 괴물 같은 소재도 봉준호의 영화 속에선 여러가지 해석과 논란과 퍼즐 맞추기 같은 추리가 만개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평론가나 인터넷에서 벌어지는 네티즌들의 '꿈 보다 해몽'때문만이 아니라 다분히 의도적인 연출때문이다 그리고 그 연출의 핵심은 바로 극이 벌어지는 장소와 캐릭터이다.

    홍상수와는 정반대, 박찬욱과도 다른..

    봉준호가 설정한 장소는 현실적인 곳이지만, 동시에 여러가지 의미를 지닌 곳이 대부분이다. 모든 장소가 보는 사람들에 따라 그럴 수 있다지만 감독의 의도적인 설정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예를들면 아파트라는 장소의 다양한 해석이 가능했던 <플란더즈의 개>나 <살인의 추억>의 화성 역시 개발이 한창 이뤄지던 한국의 지방소도시이면서, 살인과 강간의 왕국이기도 하면서 80년대 모순이 드러나는 역사적인 무대이기도 하다.

    나아가 이러한 역사적 배경에서 좀 더 자유로웠던 <괴물>에서 '한강'은 IMF 이후 절망을 안고 뛰어드는 자살이 공간이기도 하면서, 미군이 양심의 가책이 전혀없이 오염물질을 배출할 수 있는 식민지의 강이기도 하다.

    캐릭터의 측면에서도 <살인의 추억>에선 자기 확신만 가득찬 송강호와 믿을 수 없이 무식했던 김뢰하가 그리고 백강호라는 수수께기같은 인물이 있었고 <괴물>에서도 딸을 잃었음에도 우습고 횡설수설하던 송강호가 그러했다.

    더욱이 봉준호의 영화속 주인공들은 홍상수의 캐릭터처럼 직설적이지도 않으며,  또 배경은 박찬욱의 그것처럼 비현실적이지도 않다. 아포리즘과 같은 함축적이고 은유적인 대사와 현실성과 초현실적인 장소와 배경들이 바로 봉준호 감독의 영화가 가지는 열린 구조의 핵심이라 할 것이다.

    이번 영화 <마더>의 줄거리를 보자. 일단 매우 간단하다. 정신지체로 보이는 자식이 억울한 살인 누명을 벗기기 위해 엄마가 고분분투를 하다가 알고보니 누명이 아닌 아들의 우연한 사고로 인한 과실치사였음이 밝혀졌지만 엄마의 어긋난 모성애로 아들의 범죄사실을 숨기기위해 하나 뿐인 목격자를 살해하게 된다는 내용이다.

    그러나 이러한 뻔한 반전이 있는 이야기가 봉준호의 연출로 들어가게 되면 사람들은 열광하게 된다. 그 이유는 앞서말했던 모든 추리와 해석이 다 가능한 열려있는 구성 때문이다. 영화속에서도 '바보', '병신'이라는 비아냥은 있지만 한번도 속시원하게 '정신지체'나 '발달 장애 몇급'이라는 언급이 없다는 점. 이 때문에 원빈의 의도적이거나 엄마에 대한 복수가 아니었나 하는 재해석이 가능하게 된다. 게다가 영화 속 내내 아들과 사건을 바라보는 시선이 엄마의 것이기 때문에 그러한 여지가 더욱 확대된다.

    예를들면 진태의 방으로 잔입한 엄마의 눈으로 본 골프채의 립스틱 자국이 핏자국으로 생각하게 된다는 점.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정사를 마치고 곤히 잠든 진태의 방에서 빠져나올 때의 숨이 막힐 것 같은 긴장감 등등이 바로 그러한 엄마의 심정을 연출한 것이기 때문이다. 일종의 의도적 왜곡인 것이다.

    게다가 엄마 역시도 불안정하고 정상적이지 않은 행동이나 말투 등은 봉준호적인 열린 구조를 더욱 증폭시킨다. 사실 이 부분은 연기자 김혜자에 대한 재해석이 아닌 평소의 김혜자의 모습이기도 하다. 그런 점이 바로 봉준호가 김헤자를 이번 영화의 주연 혹은 그를 위한 시나리오였다는 얘기가 나올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장진 감독의 <아들>과 같았던 봉준호의 작위 <마더>

    흔히 영화관을 나와서 더욱 생각이 나고, 계속 떠올려지는 영화가 좋은 영화란 말이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영화는 훌륭한 영화다. 그러나 소재나 그걸 풀어내는 방식이 너무 작위적이었다는 점에선 그다지 매끄럽거나 자연스럽다는 생각이 들기 힘들다. 예를들면 살인현장에서 '여고생'을 두고 그냥 지나친 것으로 나오는 장면이나 진태의 골프채에 묻혀있는 것이 피가 아닌 립스틱이었다라는 것들은 그저 트릭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심하게 말하면 드라마에서 흔히 사용되는 상상씬, 즉 앞에 있는 사람때문에 화가나서 시원하게 욕설을 퍼붓는다든지, 아니면 커피숍에서 물을 껴얹는다던지, 아니면 짜장면 그릇에 얼굴을 쳐박는 다든지 하는 것과 비슷한 것이다.

    상투적인 소재를 아니면, 이미 식상해져버린 주제를 가지고 자신의 연출력으로 새로운 영화로 해석하는 것이야 말로 거장이라 할만한 작가주의이다. 그러나 오히려 연출력은 그대로 살아있게되지만 오히려 소재가 너무나도 상투적이어서 되려 오버페이스가 되는 경우도 생긴다. 그것은 어떻게 보자면 기대치의 문제이다. <마더>를 보면서 <살인의 추억>의 추억(?)을 떠올린 관객이 많았다면 그것은 원빈의 취조씬이나 진구의 놀이동산 씬에서 멈춰버리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영화는 장진 감독의 <아들>과 같다. 마치 탕수육을 너무나 맛있게 하는 집이라 심지어 짜장면도 탕수육 같은 맛을 낼 것이라는 기대를 갖고 먹어보니, 막상 여느 짜장면 맛과 비슷할 뿐이고 그저 씹히는 양념맛만 좀 좋을 뿐이구나 했을 때 느낌과도 비슷한게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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