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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금, 이대로가 좋아요 (Sisters on the road , 2009)
    영화이야기 2009. 5. 10. 00:45

    ※ 이 글에는 치명적인(?)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당연한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인다는 것

    <지금 이대로가 좋아요>는 당연함에 대한 이야기이다.
     
    부모는 자식에 대해 책임을 지고, 자식은 부모의 보살핌을 받는 그 과정에서 싹트는 부모 자식간 정과 같은 당연함 말이다. 그러나 현실은 자식과 자장면을 함께 먹기까지 십여년이 걸리는 어떤 아버지가 있기도 하고, 자식을 이십여년이 넘게 깊이 돌보았어도 자신을 표현조차 못하는 아버지가 있기도 하다.

    그 간극은 어쩌면 현상과 본질의 차이이다. 흔히들 겉으로 보이는 현상보다 중요한 것이라는 본질 역시도 그렇게 받아들이기에 쉽지 않은 것 또한 현실이다. 형식과 내용이 같이 가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지만, 그러한 상식이 무너지는 현실 앞에서 우리가 그 당연한 내용, 즉 본질을 마음 편하게 받아들이기란 생각보다 쉽지 않은 노릇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부모가 자식을 사랑한다는 당연함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다면 '지금 이대로가 좋아요' 라고 말해주고 있는 것 같다.

    영화도 같은 현실을 반영할 때도 문화적 차이에 의해서  더 영화적으로 느껴지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대부>에서 알파치노가 신나게 기관총을 쏘아대고, 영웅본색에서 주윤발이 연발총을 난사할 때 우리는 그것을 보고 역시 영화라고 여긴다. 실제로 미국의 마피아와 홍콩 삼합회가 피가 난무하는 총질을 해대는 데도 말이다. 왜냐면 우리나라 상황에선 그런 일을 현실에서 보기 힘들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이 영화의 등장인물들 모두 지금의 우리나라에서 실재하고 있는 현실들이다. 우리 주위엔 자신이 성장한 고향과 가족을 지긋지긋하게 여기고 악착같이 공부해서 대기업에 다니는 자존감 강한 김대리도 있고, 반면 어렵지만 자신의 가정환경에 적응하고 일보다 사람을 더 좋아하는 이웃집 딸내미도 있다. 게다가 동남아에선 흔하디 흔한 트랜스젠더가 주위에선 아무래도 자주 접하진 못하더라도 TV에선 자주 볼 수 있을만큼 소수 성정체자들 또한 분명히 존재한다.

    섬, 바다, 육지.. 그들이 반목하는 여정

    이렇게 엄연히 존재하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나갈까. 영화는 이 인물들을 섬과 육지 그리고 이를 잇는 바다를 통해서 이야기한다.

    영화 속에서 제주라는 섬은 이 사람들의 엄청난 이야기의 무대의 공간으로써 안성맞춤이다. 어떻게 보자면 우리나라 영토에 엄연히 속하는 제주도는 '꿈의 섬, 평화의 섬'이라는 관광 슬로건 처럼 아무래도  이국적이고 비현실적인 이상향으로 여겨지는 곳이다. 제주도 말고 우리나라 어떤 지방이 이런 느낌을 줄 수 있을까. 그런 의미에서 제주도는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에 있는 이들을 담기에 가장 이상적인 공간일 것이다.

    엄마의 죽음으로 오랜만에 제주도 집을 찾은 명은(신민아)는 명주(공효진)을 설득해 자신의 아버지를 찾으러 가자고 한다. 대학에 진학하기 전 명은은 엄마와 배다른 언니인 명주 그리고 이모 이렇게 셋이 제주라는 섬에 살았다. 명은은 자신을 낳기전에 일본으로 떠난 아버지가 한번도 찾아오지 않자 마치 바다라는 울타리에 고립된 섬때문인양 자신의 집과 가족들 모두를 원망하게 되고 필사적으로 바다 건너 육지로 독립해 나간다.

    이제 홀로 남겨진 이모를 뒤로 한채 명은은 자신의 아버지의 얼굴을 알고 있는 명주와 제주를 떠나게 된다. 자신을 버린 아버지가 없이도 남들이 모두 인정할만큼 좋은 학교와 좋은 직장에서 자리를 잡은 후 마치 복수를 하는 것처럼 보란듯이 아버지를 만나 독설을 퍼부을 생각을 하고 말이다.

    이 두 자매의 여행은 섬을 떠나 바다를 건너면서 갈등이 불거진다. 얼마되지 않은 엄마의 죽음과 아버지를 만난다는 착찹함에 젖은 명은에 비해 술을 마시고 여행을 즐기는 명주의 행동은 이해하기 힘들다. 그들은 그렇게 바다 한가운데 배에서 다투더니 육지에 와서는 그 갈등이 폭발하게 된다. 여수의 불결한 여관방에서 숙소를 바꾸자는 명은과 돈도 아끼고 그냥 자자는 털털한 명주는 조금씩  신경전을 벌인다.

    단풍이 곱게물든 길을 떠나 렌트한 차를 몰고가며 오랜만에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것도 잠시. 차안에서 사소한 일도 다투던 자매는 급기야 차가 도로 밖으로 굴어떨어지는 교통사고를 나게 된다. 차가 완전히 찌그러져 생사의 갈림길에서 경우 나온 자매는 갈비뼈에 금이 가고 입안에서 피가 나올 정도로 부상을 당한 상황에서도 말다툼과 싸움을 그치지 않고 최고조에 달한다. -  물론 이 둘은 서로를 미워하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이부분은 꽤나 희극적이기도 하다.

    섬을 떠나 바다에서 그리고 육지로 도착하는 여정은 그렇게 갈등만이 더욱 커지는 과정이었다. 모친상을 당한 상황에서도 부하직원의 업무를 계속 재촉하는 상사때문에 갈비뼈에 금이간 상태에서도 일처리를 똑바로 처리하는 명은은 아버지를 만나는 일도 그저 업무처리 하듯이 해치우고 빨리 회사로 출근하려는 생각 뿐이다.

    바다를 건너 다시 제주땅으로..그들의 새로운 시작

    아버지를 만나는 것에 대해 어떤 감흥도 느끼지 않던 명은은 아버지를 만나기 바로 전에 놀이동산에서 그네를 타자던 명주가 성가시게 느끼며 그네에 오른다. 그네가 회전하면서 마치 지난 세월이 파노라마 처럼 스치던 명은은 자신을 끝까지 돌봐주겠다면서 한번 연락조차 취하지 않던 아버지가 결국 자신을 그림자처럼 보살폈던 이모였음을 깨닫게 된다.

    황당함과 허무함 그리고 배신감에 서울행 기차를 타려하던 명은은 결심을 하게 된다. 그 결심은 자신의 모친상 마저도 의심하며 업무를 독촉하는 상사에 대한 반항에서 "그 까짓 회사 시말서던 사직서던 내면 될거 아니야"라는 외침속에서 극적인 전환을 맞게 된다.

    사회에서 인정받는 일보다도 그 순간 명은에게 중요한 것은 가족이란걸 깨닫기나 한 듯이 말이다. 명은은 해가 지도록 기차역 플랫폼에서 서울행 기차에 몸을 실지 못하고 흐느껴 울더가 결국 명주의 어깨에 고개를 파묻는다.

    명은은 다시 떠날때와 반대로 육지를 떠나 바다를 건너지만, 떠날때와 같은 독기와 원망이 아니다. 그에게는 여성이 되길 원하지만 자신의 자식을 낳고 싶어하던 아버지를 받아준 넉넉한 엄마의 품과 남성에서 여성이 되어 그림자처럼 자신을 돌보아주던 아빠 즉 이모의 처절한 사랑을 받아들이는 갈등과 고뇌를 싣고서 바다를 건너게 된다. 명은은 선상에서 남자였던 아버지의 사진을 바람에 날려버림으로써 남성인 아빠를 버린다.

    그렇게 다시 제주땅을 밟은 명은은 비로소 자신의 아빠이자 엄마인 사람에 대해, 그 사랑에 대한 당연함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자 하는 새로운 여행을 시작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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