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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슬럼독 밀리어네어(Slumdog Millionaire, 2008)
    영화이야기 2009. 4. 20. 00:19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주인공인 자말 말릭은 퀴즈쇼에서 상금 6억원이 걸려있는 최종 단계에 왔다. 어떻게 가능했을까?
     
    A: 속임수로 / B: 운이 좋아서 / C: 천재라서 / D: 운명이니까 혹은 영화 속 얘기니깐(It is written)

    인도, 쇼비즈니스, 형제, 사랑 그리고 달리기가 이 영화를 이루고 있는 것들이다. 다시 풀어 말하면 인도의 상상을 초월하는 가난과 그로 인한 아동학대. 종교갈등으로 부모를 잃은 어린 형제들의 우정과 가치관의 대립. 운명적인 사랑에 대한 영화이다.

    그렇지만 이 모두를 합하면 '환상'이다. '영화'라던가, '고발'이라던가 운명적 '사랑' 등을 전체적 주제로 보기엔 꿈을 꾸는 듯한 이 <슬럼독 밀리어네이>를 제대로 표현하기는 힘들 것 같다.

    영화 속에서 묘사하고 있는 인도의 실상이 어느 정도까지 진짜인지는 가늠하기 힘들다. 인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달리 심리적으로 행복하다는 조사결과도 있지만, 영화에서 나오는 빈민촌의 모습이 거대 세트가 아닌 다음에는 인도의 가난은 어쨌거나 현실인 것만은 틀림없다.

    적어도 주인공 자말은 종교분쟁으로 어머니를 잃고서 가난과 아동폭력이 난무한 인도에서 형하고 단둘이서만 살아남아야 한다. 이런 황망하고도 거대한 삶의 벽 앞에서 형은 일찍이 철저하게 힘만을 좇기로 한다. 그에겐 혈육인 동생 외에는 인간적인 면을 철저하게 부정하고 만다. 모름지기 형인 살림이 온몸으로 세상을 맞닥뜨리는 우산의 역할을 하고 있다면, 아무래도 맏이가 아닌 자말은 사람과 삶에 대해 보다 더 온정적인 자세를 취하게 된다.

    그런 자말은 그 힘든 삶에도 불구하고 라띠까를 보살펴주게 된다. 빗 속에서 어미잃은 새처럼 서 있던 라띠까를 자말은 우정과 보금자리를 함께 나눌 친구로 선택하는 것이다. 물론 형 살림에겐 라띠까는 이용할만한 가치는커녕 오히려 자신들이 돌봐줘야 할 짐 덩어리 취급을 당하지만 말이다.

    자말과 형 살림은 라띠까와 함께 아동을 착취해 돈을 벌고 있는 앵벌이 조직에 들어가게 되지만, 그들이 은인이 아니라는 정체를 깨닫게 되자, 살림의 생명을 건 모험 끝에 결국 탈출하게 된다. 그러나 탈출의 순간 형 살림은 이용가치가 없다고 판단한 라띠까를 매정하게 버린다.

    마치 단단한 소라껍데기 같은 살림의 삶의 방식을 이해하지 못하는 자말은 계속 라띠까를 찾아 헤맨다. 결국, 사창가에서 고급창녀로 훈련받고 있는 라띠까를 발견한 형제는 함께 탈출하려 하지만, 다시 앵벌이 조직에 발각되게 되자, 형 살림은 라띠까가 아닌 자신이 살기 위해서 조직의 두목을 살해하게 된다.

    라띠까 탈출에 일등공신이었던 살림은 그 의도의 불순함처럼 결국 자말을 속이고 라띠까를 자신이 속한 조직폭력 두목에게 상납하고 만다. 세상살이에서 오로지 힘만을 추구하고, 자기 자신외에 모든 것들, 사람조차도 이용의 대상으로 생각하는 형 살림에게 본의아니게 버림받게된 자말은 비루한 삶을 지속하게 되지만, 라띠까에 대한 사랑만은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다.

    우연히 출연하게 된 '퀴즈쇼'는 영화적 요소가 다분하지만, 쇼를 통해서 녹아있는 자말의 힘겨운 삶과 사랑에 대한 희망을 통해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주는 무대가 된다. 그저 탈락을 목표로 하는 TV 퀴즈쇼의 건조한 문제와 보기라는 질문지들은 자말에게 있어선 삶의 고난과 역경이 고스란히 배어져 있는 피로 써져있는 글자들과 같은 것이다.

    이를테면 미화 백달러 지폐 속에 들어있는 초상인 벤자민 플랭클린을 알게되는 장면을 보면, 앵벌이 조직에 의해 강제로 눈이 멀게된 동료 소년의 슬픈 사연이 담겨져있다. 그것이 바로 인도 루피 지폐속의 간디는 몰라도 미국지폐 100달러의 인물은 알고 있는 자말의 어려운 삶인 것이다.

    이러한 자말의 인생이 고스란히 담겨져있는 퀴즈쇼와 그 쇼를 진행하는 냉혹한 쇼비즈니스계의 실력자인 MC의 모함과 계략 그리고 진행 곳곳에서 벌어지는 열한 심리전도 매우 박진감이 넘친다.

    결국 영화에서 자말은 퀴즈의 단계를 거쳐 거액의 상금을 확보하지만 더 큰 상금이 걸려있는 단계로 계속 도전하게 된다. 그의 멈추지 않는 '선택'의 의미는 모두가 아다시피 돈때문이 아니라 자신의 인생같은 퀴즈쇼를 통해 사랑하는 라띠까를 만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이었다.

    어쩌면 자말은 자신의 인생에서 처음으로 선택이라는 것을 온전히 스스로의 판단에 의해서 할 수 있던 자리가 바로 이 퀴즈쇼가 아니었을까? 그런 그의 지치지 않는 도전과 선택을 알기에 형 살림은 자신의 목숨을 버리면서 까지 동생의 사랑을 지켜주기로 작정하게 된다.

     자신이 동생의 삶을 지켜주는 우산이 아니라 칼처럼 남을 헤치고 위협하고 남의 것을 빼앗다가 자신은 물론 동생도 다치게 하는 괴물이 되어 버렸음을 알아버리고 원래의 자신으로 돌아가 희생을 결심하게 된 것은 아닐까.

    무엇이 이 비참한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것일까, 동생 자말의 선택이 형을 본연의 모습으로 돌려놓았듯이, 자말 자신은 퀴즈쇼를 통해 사랑을 갈구하는 도전과 선택을 거듭하게 된다. 돈도 명예도 아닌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면서 사랑에 한걸음씩 다가갈 때 자말은 결국 답을 모르는 마지막 최종 문제까지 도달하게 된다.

    그때의 자말의 선택이란? 답을 모르지만 도전을 한다.왜냐면 마치 자말은 희망이란 보이지 않더라도 꿈꾸는 자의 것임을 알기라도 하듯이 편안하게 도전을 하게되는 것이다. 그래서 결과는? 결국 자말은 사랑과 돈과 명예를 모두 거머지게 된다. 이런 부분이 영화적 환상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말의 무모한 도전이란 것이, 고된 세상살이이라 하더라도 라띠까에 대한 사랑이,  희망을 잃지않고 자신의 삶이 왜 지속되어야 하는지에 이유였기 때문에 그래서 결과에 상관없이 아름다운 것을 알기 때문에 자말과 라띠까 그 둘의 사랑에 대해 환호를 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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