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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허니와 클로버 (Honey and Clover, ハチミツとクローバー 2007)
    영화이야기 2009. 3. 16. 00:15
    "초원을 만들려면 허니와 클로버가 필요하다" - 에밀리 디킨슨

    성경에서는 세상에 가장 중요한 것이 '빛과 소금'이라고 했던가. 여튼 인생에서 가장 푸르는 때를 청춘이라 한다면, 그 초원과 같은 청춘의 푸르름을 이루는 것은 꿀 하나만도 아니고, 설령 네잎 클로버라도 하더라도 그 하나만으로 이뤄지지는 못하나 보다.

    영화에서는 천진하고 어린 천재로 나오는 하구미(아오이 유우)와 세상을 많이 경험한 또 하나의 천재작가 모리타와 연상녀를 짝사랑하는 마야마와 또 그러한 그를 짝사랑하는 야마다 그리고 우리 자신이라고 할 수 있는 온화하지만 조금 매력은 부족한 청년 다케모토가 나온다.

    그들은 모두 청춘이다. 그들은 둘, 셋이 모여있을 때 즐거워하며, 특히 모두가 다 함께 있을 때 빛을 발한다. 영화 속 대사대로 그야말로 "청춘이 최고!"인 것이다.

    그런 그들이 각기 혼자있을 때 그들은 시들어지며, 비록 만나다 하더라도 연대감이 흐트러졌을 때 그들은 행복하지가 않다. 게다가 우리 모두는 자신의 청춘에선 주인공이었다 하더라도, 그 누가 우리 청춘속에서 만인의 주인공이었던 적이 있던가.

    영화는 천재가 아닌 다케모토가 주인공이다. 성실하고 온화하고 사람 좋은 타케모토는 영화 초미에서 평가를 받듯이 그렇게 매력있는 사나이는 아니다. 게다가 그 자신도 벚꽃이 필 때 보다 꽃이 지고나서야 마음이 편해지는 유우부단하고 배려심이 충만한 그런 청년이다.

    그런 그에게 첫 눈에 반해버린 소녀가 나타난다. 사실 누구의 인생에서도 어린 시절 첫사랑 소녀처럼 완벽한 존재가 있던가. 마치 자신을 모르는 세상에 푹 빠져있고, 그 눈짓, 몸짓 하나하나 마치 세상의 것이 아닌 것처럼 보이는 외경심은 정말 그 대상을 숭배하지 않을래야 않을 수 없는 가슴 떨림이다. 영화에서는 그런 대상인 하구미를 천재 미술가로 표현한다.

    대부분의 우리들의 첫사랑을 돌이켜보면, 대개 그런 대상에게 우리는 고백하지 못한다. 영화에서도 나오듯이 왠만한 눈치가 있는 사람이면 사랑의 고백이라 여길만한 말을 흘려도 그 사람은 내 사랑을 알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운하지 않은 것은 나 자신에 대한 자괴감일 것이다. 당연히 모를 것이라는 부끄러움 말이다.

    그런 대상에게 범접하지 못하는 내가 당연하듯이 그런 대상에 어울리는 멋진 남자는 따로 있다. 그 사람이 영화 속에선 모리타이다. 세상경험도 풍부하고, 자신이 좋아하는 하구미의 천재적 능력과 조응할 수 있는 미술적 천재성을 지니고 있는 모리타. 사실 영화의 이런 부분은 소위 선남선녀라는 이상적인 관계지만, 현실에서는 오히려 이상한 사내 혹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나쁜 남자와 여자가 엮이게 되는 경우도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은 역시 난 안돼 이다. 청춘은 그래서 청춘이다. 누군가를 유혹하고 싶으면 사랑하면 안된다는 세익스피어의 유명한 명제처럼 진실로 사랑하는 사람은 약자다. 그래서일까. 대부분은 포기를 하거나 도망친다. 영화 속 다케모토 역시 도망을 친다.

    그러나 영화는 영화다. 혹은 작가의 보상심리라고 할 수 있을까? 아니면 자신이 못한 후회를 청춘들에게 하지말라는 충고라고 해야하나. 대부분은 사랑하는 사람의 미소를 가슴에 묻고 떠나가지만, 영화 속 다케모토는 그 미소를 향해 달려간다. 도망치지 않고..그리고 드디어 사랑하는 사람의 미소를 얻게된다.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의 츠네오는 이 영화가 다르게 도망을 친다. 그것도 착한 눈물을 흘리면서 말이다. 서럽게 그리고 비겁하게 도망치는 츠네오를 안타깝고 어리석게 바라보게 된다. 하지만 다시 돌이켜보면, 그래서 청춘이란 생각이 든다. 10년만에 만난 동창회에서 "그당시 나도 널 좋아했었는데.."라며 농담반, 진담반 호쾌하게 웃는 동창생의 기억이 있지 않은가.

    사랑은 가정이 없다. 그래서 청춘은 고백을 했다. 안했다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 츠네오처럼 도망치는 것도 청춘이오, 타케모토처럼 정면으로 승부하는 것도 청춘이다. 따라서 시간이 한참 지나 돌이켜 생각해 보았더니, 정면돌파하는 것만이 후회가 없다고.. 그것이야 말로 청춘! 이라고 외칠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든다. 돌이켜보면 공부 더 열심히 했어야 한다는 후회나 사랑에 대한 후회나 그 본질은 비슷하단 생각이 든다. 청춘은 통과의례이다. 이랬던 저랬던 견뎌내는 것이 미래의 나를 만드는 것일 뿐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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