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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이덴티티 (Identity, 2003)
    영화이야기 2009. 3. 14. 22:13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서스펜스와 스릴러는 의미가 다르다고 한다. 정확한 기억인지는 모르나, 서스펜스가 이미 범인을 알고 있는 상태에서 오는 공포라고 한다면 스릴러는 범인을 모르는 상태에서 벌어지는 공포라고 한다.

    이 영화 <아이덴티티>는 그런 의미에서 조금 모호하다. 어쩌면 이 영화는 서스펜스와 스릴러라기 보다는 일종의 퀴즈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퀴즈는 퍼즐을 맞추기와 같은 두뇌게임이라기 하기엔, 정신의학 전공의가 아닌 이상에는 상상력과 연상력이 풍부해야만 스토리의 열쇠를 찾아낼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반전'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식스센스>나 <유주얼 서스펙트>와 같은 방식보다도 더 뒤엉켜있어 개운한 맛이 덜 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현실과 정신세계의 분화를 밝혀주는 그 순간을 기분좋게 받아들일 수 있다면 이 영화의 반전은 나름 훌륭하다. 또한 대부분의 관객들도 이러한 새로운 형식의 반전에 환호한 것 역시 사실이다.

    저마다 자신의 마음 속에 있는 선과 악 때문에 갈등하거나 괴로워하는 경우가 있다. 특히 위기의 상황에 맞닥트렸을 때 자신의 행동이 평소에 생각했던 영웅적인 모습이 아니라, 비겁한 경우가 생길 수도 있다. <지옥의 묵시록>의 모태가 되었던 <로드 짐>이 그런 경우를 짚고 있다면, 올리버 스톤의 <플래툰>은 미국의 어리석은 전쟁이었던 베트남에서 선과 악을 외부의 인물로 상징한 두 군인의 갈등에서 깊은 반성과 치유를 우회하여 표현하기도 한다.

    이 영화 <아이덴티티>는 인간성을 시험하는 외부의 거대 담론이나 복잡한 상황과는 별개다. 다만 선과악이라는 이분법에서 벗어난 다중 인격을 통한 한 범죄자의 심리 속에서 섬세한 추리를 선보이고 있다. 그러나 영화의 2/3 이상이 범인의 정신세계 속에 있는 여러가지 인격들의 갈등과 살인을 그리고 있으니 어떤 의미에선 공정한 추리는 아니다. 영화의 오프닝에 많은 단서를 거의 주고 있지만 그것은 사실 두번째 보는 사람들을 위한 보물찾기일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객의 추리를 위한 페어플레이나 앞서 말한 전쟁과 같은 특수한 상황에서 인간이란 과연 무엇인가 하는 철학적 질문이 아니더라도, 이 영화는 꽤나 훌륭하다. 다중인격이라고 하는 해리성정체감 장애라는 정신병리학적 질병을 영화라는 장치를 통해 잘 풀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즉 이러한 장애를 가지고 있는 범죄자의 머리속에서 다양한 인격체를 하나의 장소에 몰아놓고 과연 어떤 인격이 이 사람을 범죄자로 제어하고 있는 가하는 퍼즐을 영화라는 도구를 십분 이용해 잘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론 다중인격이 결국 어릴적 억압받은  자아라는 것이 드러나게 되고, 이로 인해 퍼즐이라는 오락성을 벗어난 후 인간 본연에 대한 측은한 마음조차 가지게 해준다. 한가지 흠이라면 영화라는 장치를 조금 과하게 사용하여, 초자연적인 현상을 너무 많이 사용한건 아닌가 싶다. 그렇지만 이 영화는 너무 많은 것을 담고 상상하다가 주인공이 꿈에서 깨어나는 비루한 결말로 마무리하는 것까지 넘어가진 않는다.

    영화는 태생적으로 현실과 상상이라는 것의 조합으로 이뤄질 수 밖에 없는 장르여서 기본적으로 하이브리드라고 할 수 있다면, 스릴러와 오락영화라는 관점에서 이 영화는 영화적 하이브리드를 최고의 수준으로 선사하는 영화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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