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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워낭소리 (Old Partner, 2009)
    영화이야기 2009. 2. 27. 01:37
    전국에 워낭소리가 울려퍼지고 있다. 2009년 대한민국이라는 척박한 대지에 할아버지와 할머니 그리고 그들의 40년지기 소와 더분 삶으로 한줄기 해갈을 선사해주고 있는 격이다.

    특히 이 소박한 독립영화이자 다큐멘터리는 우리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주목을 받고 있다. 한국영화 사상 처음으로 선댄스 영화제에 출품되었다고 한다.

    워낭소리의 봉화와 위트니스의 아미쉬 마을

    이 영화는 6-70년대 우리 농촌과 농민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사실 소를 이용한 농사를 고집하는 할아버지의 방식 때문이다. 어찌보면 그리 생경한 모습이 아니지만 카메라가 돌아가고 있는 지금 시점인 현대에선 뜻하지 않은 묘한 대비를 이룬다. 예를들어 농약을 뿌리는 아랫 논이 바라뵈는 할아버지의 논에선 불편한 몸을 이끌고 일일 김을 메고 있는 풍경 같은 것이 그렇다.

    그러나 이 영화가 예기치 않게 많은 사람들에게 반향을 일으키고 있는 이유가 이것만으로 설명이 될 수 있을까. 단순한 과거의 향수, 고향집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일까. 스토리가 없고, 작위가 없는 시골이란 공간과 할아버지, 할머니, 그리고 소가 보여주는 풍경만으로는 이를 충분히 설명하지 못한다.

    해리슨 포드, 피터 위어 감독의 <위트니스>라는 영화가 있었다. 이 영화에선 아직도 19세기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는 아미쉬 마을 사람들이 나온다. 이 사람들은 실제로 수백년전 삶의 방식을 고수하고 있다. 우리나라 민속촌같은 전시장도 아니고 제주의 성읍민속마을 처럼 관광상품이 아니다.

     단순히 휴대폰이 성가시고, 인터넷이 부담스럽고, 해마다 기관지를 괴롭히는 도시의 탁한 공기와 매연을 내뿜는 자동차가 정말 싫어서 모두 아미쉬 마을 사람처럼 살고 싶어할까. 현실적으로 현재 살고 있는 자신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야 하는 귀농에 대한 열망이 현대의 우리들에게 얼마나 있을까. 따라서 워낭소리로 몰리는 발길은 이것만으로는 충분히 설명하기 힘들다.

    이 영화는 흙속의 진주를 찾은 것이 아니다.

    워낭소리는 우리가 몰랐던 전혀 새로웠던 우리 농촌의 모습, 부모님의 모습을 찾아준 것은 아니다.물론 1차산업이 거의 다 몰락해버린 요즘, 어릴적부터 도심에서만 자란 아이들, 혹은 농촌에서 자랐다고 하더라도 기계화된 농촌의 모습에서 소를 키워가며 농사를 짓는 모습을 보지못한 세대들에겐 생경한 모습이 될 수도 있다.

    덧붙여 이런 세대들에겐 이 영화는 <화려한 휴가>와 같은 느낌일 수도 있다. 5.18 광주항쟁이 실재했던 사건을 알지도 못하고, 설사 알았다 하더라도 영화이기 때문에 픽션과 논픽션에 관계없이 휘발되는 감정과 역사의식들..마치 박제된 현대사의 운명 같았다. 워낭소리는 이런 면에선 박제된 고향이나 우리 부모의 모습일 수도 있을 것이다.  여튼 이러한 의미에서 워낭소리가 독특한 소재나 뛰어난 풍경을 보여주는 영화가 아닌 것만은 틀림없다.

    우리가 행복하지 않다는 반증

    워낭소리에 쏠리는 시선과 눈물은 우리가 불행해서 인건 아닐까. 같은 평수의 논에서도 농약과 기계를 이용한 농사를 통해 소를 이용한 농사법보다 더 많은 수확을 낼 수 있다. 그러면 내 주머니의 돈은 더 두둑해 진다. 이것처럼 고도의 산업화, 정보화를 이룬 현대 사회는 분명히 예전보다 풍요로워졌다. 그렇다고 세상이 예전보다 더 자유롭거나 평등한 것만은 아니다.

    가령, 열심히 일하면 일한만큼 꼭 보상이 돌아오는 것이 아니다. 누구는 부모를 잘 만나서 좋은 사교육을 받고 좋은 학교에 해외 유학까지도 갈 수 있다. 또 누구는 돈이 너무 많아서 분식회계나 상속에 있어서 범죄를 저질러도 특사로 금방 풀려난다. 누구는 열심히 일해서 받은 봉급을 은행에 차곡차곡 저축을 하는데 월세, 전세값은 내 저축액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하늘 높이 수직상승한다.

    <워낭소리>는 이러한 삶의 팍팍함과 나라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부를 축적하는데 그 불공정함과 더불어 나의 정당한 혜택으로 귀결되지 못하는 현실에 대한 비관때문에 주목을 받고 있는 것은 아닐까.

    소가 도살장이나 소시장에 끌려갈 때 울었다던가, 이 놈의 소가 죽기 전에 올 한해 땔감나무를 모두 해주고 죽었다던가 하는 이야기는 어릴적부터 어른들에게 자주 듣던 말이다. 그걸 내눈으로 못봐서 영상으로 확인하고 싶어서 관객들이 몰리는 것은 아닐 것이다.

    다시한번 말하자면 <워낭소리>는 우리가 행복하지 않아서 보는 영화일 것이다. 다만 현명하게도 우리는 셜리템플이 나오는 달콤한 환상보다는 꼴을 우적우적 씹고 있는 소를 찾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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