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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침이 고인다 - 김애란 지음
    독후감 2009. 1. 31. 17:30

    몇해전 <달려라 아비>로 화려하게 등장했던 김애란의 두번째 소설집이 나왔다. 바쁜 생활때문에 나만 무던 했던지 너무도 조용하게 등장한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책을 사고 표지를 넘기니 벌써 9쇄 째다. 게다가 출판된 지는 벌써 작년 7월경이었다. 

     두번째 소설집의 제목은 <침이 고인다>이다. 제목부터가 김애란 스럽다는 생각이 든다. 내 멋대로 김애란스럽다라고 단정한 것은 이 짧은 제목에서 풍겨지는 뭔가 응축된 이야기 속에 왠지 모를 슬픔이 스며있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앞서 <달려라, 아비>라는 제목에서 말아톤 스러운 감동을 예상했다면, 이번엔 조금 음침함이 연상되는 <침이 고인다>에서도 예상은 여지없이 빗나갈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마치 나는 김애란을 아주 잘 아는 사람인양 김애란스럽다고 정의를 내린다. 

     책표지에 출판사가 고심해서 썼을 홍보 문구를 보면 '그렇고 그런 일상에서 단물처럼 고이는 이야기들.., 슬픔도 담담하게 쓸쓸함도 유머러스하게~" 양장판 표지를 둘러싼 띠로 된 종이에는 '투명한 감성, 위트 넘치는 문체, 청신한 상상력..다시 김애란이다!'라고 씌여있다. 

     맞는 말이다. 사실 그의 소설은 다소 통속적이다. 그의 소설에 자주 등장하는 '노량진' 같이 지명처럼, 한강을 건너는 국철 안에서 보이는 풍경과 감상처럼, 반지하 방에 피아노가 들어있게 된 경위나 (도도한 생활), 후배와 같이 살다가 헤어진 일(침이 고인다), 하다못해 크리스마스 이브때의 쓸쓸함(성탄특선) 등은 마지막 소설 (플라이데이터리코더)를 제외하고 진부한 소재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흥미로운 것은 김애란의 그 통속적인 소설 속 등장인물들의 생각이나 감상을 읽어내려가다보면 뭔지 모를 공감을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마치 길에서 우연히 취기가 약간 올라 죠스바를 낼름거리는 한 여학생을 봤을 때나, 혹은 친구랑 같이 자취하다가 사이 나빠진 적 있다는 사람들의 경험담을 들었을 때, 그냥 그런 스쳐가는 단편적인 감상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어째서 그 여학생이 그 시간에 죠스바를 먹고 있었는지, 그리고 나는 왜 자취하다가 친구랑 사이가 틀어졌는 지에 대한 이야기를 그 여학생과 아주 친한 사이인 것 처럼 수다를 떨며  속속들이 사정을 듣는 것과 같은 공감은 물론 실제로 내가 느꼈지만 명료하게 표현하기는 힘든 당시의 생생하고도 여러갈래였던 감정을 아주 명쾌하게 서술한다. 

     사실 이제는 무덤덤하고, 그냥 피식 웃음밖에 안나올 수도 있지만 당시에는 얼마나 구구하고 절절했던 감정들에 대해서 김애란은 매우 간결하고 정교하게 글을 써내려갈 줄 안다. 게다가 그것이 설사 내 느낌이나 경험과는 거리가 있다 하더라도 솔직하고 또 맛깔스럽게 그리고 울지는 않지만 충분한 떨림이 느껴지는 목소리로 말이다. 그의 얘기를 듣고 있노라면 금방 아주 오래전 부터 알고 있던 나 자신과 마주하는 기분마저 들게 한다. 게다가 가끔씩 정말 벗 사이처럼 비밀스러운 얘기로 깜짝 놀래키기까지 한다. 

     김애란은 솔직하다. 자신이 살았던 공간, 기억 그리고 현재의 일상을 부풀리거나 꾸미지 않는다. 한편 그는 삶에 저항하지 않는다. 그의 천재성은 왕성한 호기심이 아니라 일상에 사소한 행위 조차도 과거의 기억과 다양한 경험들을 의미두어 엮는 연상력에서 빛을 발한다. 이런 연상은 훌륭한 재능이다. 실제로 우리는 살아가면서 겪는 시시하고 소소한 일상을 자기 자신만이 아는 기억과 경험을 엮어 의미를 부여한다. 

     그것은 거창한 첫눈이나 성탄절 같은 기억이라기 보다는 편의점에 가서 껌 한통을 살 때 1초도 되지 않는 시간 속에서 떠오르는 '껌 가격이 300원이었던가', 라던지 '이 껌의 CM송 재미있더라' 이나 '중학교 때 짝이 좋아했던 껌이였지' 등등의 수백가지의 생각과 같은 것이라 할 수 있다. 

     김애란은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더라도 뇌속을 끊임없이 이동하는 기억의 뉴런들을 귀신같이 잡아내고 그것들의 관계와 의미 등을 기가막히게 연결짓는 재주가 있는 작가이다. 그의 소설은 크게 나무랄때는 없지만, 어떤 의미에선 여전히 시선이 자신 속에 갇혀있다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이번 소설집에서 엉뚱하게 내어놓은 상상의 공간인 플라이데이터리코더 섬은 조금 발전하는 그의 시야의 단초처럼 느껴졌다. 다만 그가 소설 속 나오는 이제는 사라진 수리부엉이를 추억하는 데 그칠 것이 아니라 눈물마저 메마른 상처를 분석하고 곱씹는 데에서 벗어나 이제는 세상 속에서 상처를 치료해 나가는 면모를 좀 더 보일 때가 되지 않았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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