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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쓰 홍당무 (Crush And Blush, 2008)
    영화이야기 2008. 12. 30. 22:55
    <미쓰 홍당무>의 제작에 있어 두드러진 특색은 크레딧에서 나타난다. 우선 이 영화는 박찬욱 감독이 첫 제작을 맡은 영화다. 예전에도 스타 감독이 제작을 맡아 성공을 거둔 경우는 많다. 이를테면 스티븐 스필버그가 <구니스>, <그렘린> 그리고 <백 투더 퓨처>등의 제작을 맡아 대성공을 거두고 또 팬서비스차원에서 직접 까메오로도 출연했던 적이 있다. 이 영화도 그와 유사하다.

     그러나 스필버그의 경우는 이전에 그가 직접 감독했던 영화들과는 비슷하면서도 다른 주제와 인물들을 추구하면서 상호 보완적인 영화 -<E.T>와 <그렘린> 혹은 <인디아나 존스>와 <구니스>-들을 제작했다면, 박찬욱의 경우는 이처럼 유기적인 관계라기 보단 순수한 제작에 그친게 아닐까 싶다. 왜냐면 이 영화는 미처 그가 구현하지 못했던 분야이면서도 그의 <친절한 금자씨>와는 다르게 훨씬 짜임새 있고 인물들이 살아있는 영화가 나타나버렸다. 그것도 피가 난무하지 않으면서도 말이다. 다시말하면 그저 제작자의 역할, 즉 박찬욱이 그간 이루지 못했던 수다스럽고, 디테일이 살아있는 그런 새로운 영화가 나타난 것이다.

    연관하여 까메오로 출연한 봉준호 감독의 얼굴이 떠오르면서, 굳이 갖다 붙이자면 봉준호의 디테일이 박찬욱의 분위기와 묘한 결합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보다 정확한 표현은 이 영화의 감독이자 각본을 쓴 이미경의 영화라고 해야 할 것이다.
     
    이 영화는 여자에 대한 이야기이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여성의 자아찾기라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남성을  배제한다거나, 그들과 각을 세우는 그런 식의 자아는 아니다. 이 영화의 백미라 할 수 있는 마지막 랩실의 장면은 누구를 판단하거나, 잘잘못을 따지는 것이라기 그저 남자의 역할이 이들의 갈등과 관계를 이어주는 환상이면서 또 깃털같은 연결고리였을 뿐이라는 것을 밝혀주고 있다.

    실제로 극중에서 남성 서종철(이종혁 분)은 과묵하고 번민하고 그리고 조금은 우유부단한 인물일 뿐이다. 그를 둘러싼 첫번째 여성은 부인인 성은교(방은진 분)이다. 자신의 남편과 관계된 스캔들과 여성에 대해서 소위 쿨한 척 표현을 하지 않고 있지만, 남편에 대한 공적인 관계보단 내적인 애착을 원하고 있다.

    둘째로 이유리 선생(황우슬혜 분)이다. 아름다운 외모와 남성에게 사랑받는 법을 잘 알고 있는 이 젊은 처녀는 학교에서 근사해 보이는 선배교사인 서종철에 대한 로맨스를 꿈꾼다. 셋째론 서종철의 딸인 서종희(서우 분)가 있다. 어머니 그리고 아버지에 대해 부모로서 전통적인 역할을 기대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이 영화의 주인공인 미쓰 홍당무 양미숙(공효진 분)이 있다. 미숙의 경우는 자신의 상처와 컴플렉스를 서종철을 통해 해소하려고 하는 신앙과도 같은 짝사랑을 하고 있다.

    앞서 말한 마지막 랩실에서 이 모든 당사자들이 모인다. 그리고 수많은 말을 나눈다. 그리고 그들 각자가 자신의 자아를 찾는다. 혹은 자기 스스로의 생각을 마음을 깨닫게 된다. 그러나 얄궂게도 서종철에겐 그런 기회를 주지 않는다.

    종철의 아내인 성은교는 자신이 남편과 딸 즉 가족을 얼마나 사랑하는 지를 깨닫게 된다. 그 사랑이 정도는 연하인 남편의 의도적이지 않았던 외도를 눈감을 준비가 이미 되어 있다는 것과 남편과의 첫만남이 사랑이었다는 확신이 있다. 아마 그들 가정은 더 나은 형태로 이어나갈 것이다.

    이유리는 자신의 감정보다 상대방의 감정에 충실했을 뿐이다. 조금 안타깝지만 실제로 이런 여성들은 존재하고, 감독의 시선에서도 이유리는 자긍심보단 자존심만이 있는 역할이었고, 때문에 자신에게 관심을 끊은 서종철 대신 다른 남자와 연애를 즐기기로 한다.

    서종희는 연대감을 더 중시하게 된다. 서종희는 연대감은 남다르게 합리적인 면이 있는데 그것은 비록 자신의 가정을 해할 수도 있었던 양미숙과의 우정을 이어나간다는 데에 있다. 자신의 부모가 사랑으로 자신을 가졌다는 점, 그리고 이혼하지 않는다는 전제하 이긴 하지만  자신과 비슷한 아픔과 컴플렉스를 지니고 있는 양미숙이란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와 동정은 기성세대가 이해할 수 없는 십대 특유의 에고이며, 어떤 편견과 오해에도 굴하지 않는 자기 자신만의 사고를 할 수 있는 희망적인 메세지를 주는 인물이다.

    끝으로 미쓰 홍당무 양미숙은 자신의 외로움과 컴플렉스를 서종철을 사랑해서가 아니라 이용할려고 했다는 것을 깨우치게 된다. 마치 기복신앙처럼 남자를 통해 도피를 꿈꾸었던 것이다. 술이 취한 직장 동료끼리 티코라는 작은 차에 꼭끼여 탔을 때 불가항력적으로 일어나는 스킨십을 그 남자를 좋아해도 된다는 식으로 자기 합리화를 하게된다. 그러나 그것이 얼마나 허망하고 이기적이고 소외된 행위인지를 깨닫게 된다. 하지만 그러한 깨달음 후에 마치 하늘을 날아다니는 <매트릭스>의 네오처럼 완전한 독립체가 아닌 이상 미숙은 자신과 꼭 닮은 종희와의 우정 즉 연대를 통해서 극복하고자 한다.

    굉장히 비정상적이고 얼토당토 하지 인물들을 희화화 해서만 나오는 것 같지만, 결국 그들의 고민하는 것은 소위 정상적(?)이라고 생각하는 우리들이 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그렇지만 훌륭한 것은 이들은 한자리에 모여서 머리를 맞대고, 혹은 반목하고 그러나 모든 것을 열어놓은 채로 고민을 공유하고 이를 통해 어느정도 해결한다는 점이다. 이건 누굴 믿느냐 못믿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정치적이지 않은 인간을 인간으로만 만나는 장이라는 점에서 거의 환타지에 가깝다는 것이 영화라면 영화고 현실이 그렇지 못하단 점이 아쉬울 따름이다.

    참, 잊을 뻔했다. 이 영화는 이 모든 것이 굉장한 수다와 배꼽이 빠질 듯한 유모로 채워져있다. 그것도 앞서 말한 스타일과 시각으로 매우 독창적이게 말이다. 끝으로 개인적으로 올해 본 최고의 영화라고 꼽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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