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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드골, 프랑스 나치협력자 청산의 주역
    정경사 2008. 7. 15. 08:40

    몇 년 전 화제가 되었던 소설 <다빈치코드>에 보면 '프리메이슨'이라는 비밀 단체에 대한 언급이 나온다. 이 비밀 결사가 전 세계의 경제, 문화, 그리고 전쟁 등 모든 의사결정을 좌지우지 한다는 내용이다.

    우리나라의 해방이후 현재까지 이어지는 일련의 민주주의의 비극을 보고 있노라면 마치 지난 '친일파' 세력들이 프리메이슨 처럼 우리나라를 아직까지도 뒤에서 조정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든다. 실제 강우석 감독의 영화 <한반도>에서는 이런 친일세력이 현재에서도 총리를 데려다 놓고 콘트롤타워 역할을 하는 장면이 나오기도 한다.

    사실 이러한 의구심이 음모론이라 치부할 수 없는 이유는 해방이후 우리나라에서는 친일파에 대한 숙청이나 또는 그들의 제대로된 반성조차 이뤄진 적이 없었고, 실제로 그 당시의 친일파 들이 나라 전반의 경제, 사회, 정치, 언론, 교육 등의 분야에서 기득권을 유지해 나갔기 때문이다. 그러니 자신들의 이러한 기득권을 놓치지 않기 위한 수단을 강구한 것은 당연한 일이기 때문이다. 한편으론 국내나 만주에서 항일 운동을 하던 독립군들의 후손들의 비참한 생활은 이에 대한 반증이 아닐 수 없다.

    우리나라와는 달리 2차세계 대전 당시 프랑스를 해방시킨 드골은 집권하자마자 나치 협력자들에 대한 대대적인 숙청작업에 나섰고 이를 관철시켰다. 드골은 비시정권과 나치 협력자들을 프랑스 패배를 악용한 투항주의자, 프랑스를 나치의 '악'으로 인도한 비시정권 그리고 히틀러 승리를 위해 협력자을 규정하고 이들을 모두 민족 반역자와 간첩혐의로 체포했다.

    드골은 1944년 8월부터 1960년까지 수사 대상 200만명 가운데 99만 명을 체포해 무려 7,800여 명에게 사형선고를(실제로 700여 명에 대해 집행을 하였다), 4만 2천여 명에게 무기 강제 노동형과 유기징역 등의 중역을 선고했다. 또한 12만 명에게 부역죄를 선고하여, 공민권과 프랑스 국적까지 박탈하는 준엄한 응징을 하였다.

    드골은 소위 '피의 숙청'을 단행하여 민족 정기를 바로 세워나갔다. 그는 이런 심판에 대해 다음과 깉이 말했다. "이들의 범죄와 악행을 방치하는 것은 국가를 전염시키는 '농영과 종기'를 그대로 두는 것과 같다. 그래서 심판해야 한다"

    민주주의는 피를 먹고 자란다는 말이 있다. 아울러 식민지에서 해방 된 민주주의의 시작은 더러운 피를 흐르게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프랑스는 민주주의와 민족정기 그리고 정의를 바로 세우기 위해 '반역자'들에게 준엄한 처단을 단행하였다.

    역사는 가정하는 것은 부질없다고 하지만, 세계 10위의 경제대국으로 자랑스런 대한민국을 이룬 것이 이승만과 친일파 박정희와 그 세력들의 업적이라고 흔히들 얘기하지만, 프랑스와 같은 친일파들에 대한 준엄한 피의 숙청이 있었다면, 우리 역사가, 지금 현재 대한민국이 어떤 모습으로 되어 있었을까?

    이승만과 친일파 박정희 군사독재 세력이 소위 '보수'가 되고, 진정한 보수 우익은 이미 흉탄에 쓰러져간 김구 선생과 같이 이땅 위에 자취를 감춘 지금은 나라를 사랑한 사람들은 칭찬을 받고, 민족과 공동체를 배신하고 자신의 이익을 탐한 자들은 벌을 받는다는 이 단순한 정의가 바로서지 않았을까. 그런 점에서 프랑스가 좋은 스승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드골, 프랑스 나치협력자 청산의 주역, 주섭일, <내일을 여는 역사 30호>

    프랑스의 과거청산

    드 골 정권은 나치 독일에게 프랑스가 점령당한 기간 동안 나치 독일에 협력했던 언론인들을 처벌함으로써 잘못된 과거사를 심판하였다. 당시 드골 정부는 900여 종의 신문·잡지 가운데 나치 독일에 협력한 694종에 대해 폐간이나 재산몰수로 처벌하였으며, 드 골의 사관학교 재학시절 교수였던 페탱 원수를 포함한 나치독일 협력자들도 재판으로 처벌하였는데, 프랑스의 철저한 과거사 청산은 일제에 협력한 친일파들과 그들의 논리가 반공세력들인 이승만 정권과 친일파들의 결탁으로 과거사가 청산되지 못한 한국 현대사와 비교된다는 비판도 있다. 

    그러나 드골의 과거사 청산의 이면에 아시아권과 아프리카에 식민지를 건설했던 프랑스는 베트남, 알제리, 기니 등에 대한 1870년대 이후의 식민통치와 징집, 징발 등에 대한 사과나 보상이 없어 이중잣대라는 비판도 존재하고 있다. 그 근거로 프랑스 정부는 식민지 민중들의 인권을 짓밞은 역사적 죄에 대해 사과나 보상을 하지 않고 있으며, 오히려 자크 시라크 대통령이 기니에서 이미 지난 일이니 잊자고 주장하는 뻔뻔함을 보였다.


    위키피디어: http://ko.wikipedia.org/wiki/%EB%93%9C%EA%B3%A8#cite_note-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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