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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쇠고기 반대 촛불이 저항이 아닌 열정인 이유
    정경사 2008. 6. 4. 00:18

    이번 쇠고기 사태로 인한 국민적 분노가 점점 더 뜨거워지고 있다. 지난 대선에서 소위 유권자가 이명박 후보를 대통령으로 만들어 준 지 채 100일이 되기 전부터 이번엔 국민이라는 이름하에 80%가 넘는 여론으로 쇠고기 수입을 반대하고 나아가 이명박 정부에 대한 불만을 표출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 부분에 대해서 비단 쇠고기 문제 때문이라고 국한 짓는 사람은 적을 것이다. 강부자, 고소영 내각이라는 범용적인 문제부터 굴욕적인 대미 외교라는 보수적이라고 하기보단 민족적인 문제 그리고 우리동네 집값을 올려주지도 못한 이기적인 부분까지 각 세대, 계층을 어느정도 망라한 불만들이 에너지화되고 있다.

    여하튼, 쇠고기로 빚어진 국민적 분노가 점점 이명박 정부 반대 등 정치 사회 문제로 변화 발전하고 있는 것을 두고 진보와 보수간의 해석과 기대의 차이도 벌어지고 있는 것 같다. 보수적 시선은 그것이 국익을 해치는 위험한(?) 반미라던가, 내지는 민주주의에서도 엄격한 질서를 주장하는 목소리를 내고자 한다면, 진보 쪽에선 정권 퇴진이라던가 등을 통한 국민의 정치의식 고양 그리고 여전히 대의민주주의 보단 국민의 직접 민주주의의 방식을 기대하는 그런 입장을 견지하고 있는 듯하다.

    어쨌든, 그동안 보아왔던 정치 공학적 접근과 해결방식이 여지없이 무력해지는 것을 보면 재미있는 현상이라는 생각도 든다. 민주당 대표와의 회담, 박근혜와 회동, 여당대표와 오찬, 대국민 사과 등의 일련의 정치 공학적인 해법이 하나도 통하지 못하는 것을 보면 이명박 대통령의 정치력이 바닥을 보이는 것 같아 안타깝기까지 하다. 결국엔 뭐 신뢰의 문제일 테지만.

    내 생각에 이번 사태의 국민적 분노의 실체는 '열정'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보수가 우려(?)하는 반미도, 체제 전복 기도는 더더욱이 아닐 뿐더러 동시에 진보에서 바라는 정권 퇴진 그리고 민주주의 의식 고양과도 그닥 밀접하진 않다는 생각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번 국민의 집단 행동이 시위나 데모가 아니고 일종의 축제인 것은 지도부나 배후가 없다는 점에서 분명해진다.

    물론 제2의 주권이라는 하는 검역에 무너지고 국민의 생명이 위협받는 광우병에 대한 대대적 저항의 측면이 강하지만, 이것은 시시비비를 냉정하게 따지기 보다는 0.001%의 가능성에 대한 스트레스가 80%를 넘는데에 대한 분노라고 할 수 있다.

    열정 자체는 '좋다, 싫다'를 간단히 정의 내릴 수 없는 성질의 것이다. 게다가 이번 열정이 '나는 꼭 쇠고기를 먹어야 한다'는 것은 결코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난 안먹을 거야'에서 '나, 너 할 것 없이 광우병에서 보호되어야 하며 이를 공동체 정신으로 헤쳐나가자'라는 목적 의식의 발로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냉정하게 말하자면 이기심이 이타심과 닿은 묘한 상황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또 다른 말로는 지극히 합리적(경제인의 합리성)인 행동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안에서는 미국도, 공권력등의 정치적, 사회적 본래 의미는 힘을 잃게 마련인 것이다.

    지난 2002년의 열정이 국가대표 축구팀을 업그레이드 하거나, K-리그의 부흥을 가져오진 못했다. 이번 쇠고기로 인해 불거진 열정 역시도 민주주의를 가져온다거나, 다음에 있을 선거에 잊지않고 반대표를 행사한다거나 하는 것으로 발전하리라 보장할 수는 없다. 열정은 일견 뜨거워보이기 때문에 저항과 혼동될 수 있지만 쉽게 꺼져버릴 수도 있기 때문에 명확한 방향과 의지를 지닌 저항같은 뚝배가 그릇이 되진 못한다.

    이번 열정의 끝은 아마도 '쇠고기 재협상'으로 귀결될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명박 정부의 일방향적인 정책에 브레이크를 거는 효과를 거둘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기쁘지만 만족할 수는 없다. 국민은 위대하지만, 정당정치라는 민주주의 시스템을 타지 못할 때 그 힘은 분산되고, 여전히 정치 공학적인 놀음에 빠져 다시 또 제자리 걸음이 되기 쉽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중요한 것은 이런 열정은  결과적인 면에서 옳은 방향인 적이 대부분이었다는 점이다. 이런 점에서 열정을 제대로 파악하고 잘 마르고 단단한 장작에 열정을 태워 어두 컴컴한 동굴을 밝히는 횃불처럼 쓸 수 있는 사람, 특히 그런 조직인 정당의 출현이 매우 절실하고 시급하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불행히도 월드컵, 쇠고기와 같은 열정이 꼭 역사발전을 위한 동력이 될지 불분명하기 때문에 어려운 부분이 많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열정은 타오르기만 할 뿐 초가집을 태울지, 기와집을 태울지 어떤 방향으로 어떤 얼굴을 가지고 있을지 알 수가 없다. 정치적으론 이것이 혁명이 될수도 있지만 파시즘이 될 수도 있단 점에서 위험하기 까지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명박 정부에 대한 충분한 견제와 경고가 되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의 대운하와 같은 정치적 폐단을 방지하는 기능을 할 것이라는 점에서 기쁜일이며, 동시에 그 후에 한미FTA가  비준되거나 부동산 값이 더 오르거나, 금산분리법이 턱없이 완화된다고 하더라도 더 크게 실망하거나 국민을 책망하는 일이 되지 않을 것이기에 서글픈 일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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