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규정의 함정에 빠진 노빠, 가수협의회, 언론…
    정경사 2007. 1. 29. 09:00
    규정을 짓다를 사전에는 어떤 내용이나 성격 그리고 의미들을 정하는 것을 밝히고 정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학교나 직장에서의 관계나 토론 등에 있어서 나와 상대를 규정짓는 것에 대해서 거부감이 들 때가 많다. 상대방을 규정짓는 것은 다분히 계산적이거나 정치적인 전략일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역사적으로 이런 일은 정치계나 언론에 의해서 자행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해방을 전후로하여 지금까지 그 위력을 발휘하는 대표적인 것이 '빨갱이'라는 규정일테고, 최근에도 지역에 근거한 선긋기, 또 '황까'니 '황빠'니 하는 이름매김은 그 내용과 의미나 성격을 밝히기도 전에 하나의 규칙처럼 고착화되어 버려 편가르기의 도구로 전락해 버린다. 그것도 우리편, 내편이 아닌 어릴적 '좋은 나라', '나쁜 나라'밖에 판단 기준이 없었을 때 처럼 말이다.

    지금 하고 싶은 얘기는 자기 스스로를 규정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단체나 조직 혹은 정당처럼 자기 스스로를 '규정'하고 그에 따른 사고나 행위를 적극적으로 지키는 사람들이나 집단에 대해 생각해 보고자 한다.

    며칠전 오마이뉴스에서 헤드라인으로 올라서 오늘까지도 논란이 되고 있는 기사가 하나 있다. 기사의 제목은 대통령님, 왜 서민들이 등을 돌렸는지 아십니까?' 이다. 한 서민이 현재의 상황에 대해 대통령에게 호소하는 편지의 내용이었는데, 이렇게까지 논란이 된 것은 그가 한 때 노무현 대통령의 열렬한 '노빠'라는 단어를 썼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는 부제에 나타나있는데, 부제는 '[편지] 열렬한 '노빠'였던 50대가 노무현 대통령에게 드리는 글'이다.

    내 생각에 위와 비슷한 사건을 하나 더 소개하자면, 가수 김진표와 가수협의회 회장 최백호와의 논쟁을 들 수 있다. (최백호 “가수협회는 김진표에게 분노 느낀다”) 가수 유니의 빈소를 찾았던 김진표가 가수동료들에 대한 비판을 남긴 글에서 '가수협회'라는 단체를 명시한 것때문에 가수협회장인 최백호 씨가 김진표를 반박하면서 불거진 사건이다.

    마지막으로 손석춘 위원이 노무현 대통령의 신년 인사회에서 발언한 '언론관'에 대해 아래와 같은 반박기사를 낸일 있습니다. ('대통령이 국민평가 신경쓰지 않겠다?) 장문에 걸쳐 여러가지 내용을 피력하고 있지만 언론에 대한 평가에 신경쓰지 않겠다고 한 대통령의 말에 대해 "대한민국 언론 <조선> <동아>밖에 없습니까" 라고 반문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위에 모든 얘기는 결국 '규정'에 대한 여러가지의 예라고 생각된다. 오마이뉴스의 노빠 논란은 결국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여러가지 다른 의견들에 대한 토론이 아닌 '노빠'란 것에 대한 내용과 자세가 틀렸단 얘기다. 즉 그 기사의 작성자는 '노빠'가 아니란 것이다. 즉 스스로를 '노빠'라고 규정할 수 있는 범위와 행동 그리고 사고에 있어서 진정한 의미에서는 '노빠'라고 스스로를 규정지은 사람들에게는 용납하기 어려운 사이비 '노빠'라는 것 때문에 비판 일색의 댓글이 달리고 있는 것이다. 때문에 건전하고 다양한 토론이 이뤄질 수 없는 것이다.

    가수협회의 입장도 이와 유사하다. 김진표의 가수동료에 대한 입장표명과 비판은 충분히 공감을 얻을 수 있는 가수와 가수계에 대한 일종의 자아비판이었지만, 그 글속에서 '가수협회'라는 단체를 명시적으로 밝힌 것 때문에 '가수협회'와 그 협회의 장인 최백호 씨의 격렬한 항의를 받고 있는 것이다. 이 경우 역시 내용 전체에 대한 생산적인 토론 보다는 그저 하나의 단체명의 언급 때문에 본질이 흐려지는 현상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마지막 사례는 언론이라는 보통명사를 언급함으로서 마치 대통령이 싸잡아 모든 언론에 대한 불신을 토로한 것처럼되버리면서 조중동이 아닌 다른 언론에서 그러한 '규정 짓기'에 대해 실망과 반론을 제기한 것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정치 디자인, 디자인의 정치’ / 노순택 작

    어떤 사안이나 현상에 있어서 자신을 규정함으로써 불거지는 문제는 자신이 아닌 다른 모두를 적으로 삼을 수도 있다는 점일 것이다. 대부분 그 폐해를 인정하는 이분법이 판을 치게 되는 것이다. 어떤 사안을 이야기할 때 갑자기 "당신, 페미니스트잖아!" 라던가 "어? 뭐야? 나는 너네 같은 '황까'하고는 말 못해" 라고 상대방의 한가지 의견이나 성향을 두고 그 전체를 '무슨무슨 주의자'로 규정해버리는 것은 상대방을 완전히 무시해버리고 마는 일이다. 그래서 무슨 의견교환과 민주주의가 이뤄질 수 있겠는가!

    이런한 '규정 짓기' 놀이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상대방과 나의 다른점과 틀린점을 명확히 구분해야 한다. 무슨 어릴 적 '얼음땡' 놀이도 아니고 상대방을 굳어버리게 하고 그 사람이 무슨 말을 해도 00주의자가 되버리는 그런 반민주적인 행위에 대해 재고해봐야 할 때이다. 다른 점은 존중해주고 틀린 점은 매섭게 꾸짖고 고칠 수 있는 그 구분의 논리 없이 행해지는 규정짓기는 하나의 강력한 폭력이고 그런 놀음에 과정에선 그런 폭력 뒤에서 웃음짓는 사람들의 꼭두각시가 되버릴지도 모른다는 점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반응형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