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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해변의 여인 (Woman On The Beach, 2006)
    영화이야기 2006. 10. 23. 20:31
    <극장전>이후 1여년 만에 홍상수 감독이 선을 뵈는 영화다. 클랭크인 전에 벌써 고현정 캐스팅으로 감독이 인터뷰를 했던 기억이 난다. ( 고현정, 홍상수와 손잡고 '스크린 정복' 노린다 ) 사실 고현정 캐스팅에 대해 우려가 반이상였지만 홍상수의 영화 답게 <해변의 여인>에서 고현정은 튀지 않고 잘 녹아들어있었다. 앞서 말한 인터뷰에서 거의 극찬(?)을 하던 감독의 기대 여파때문인지 고현정의 캐릭터는 기존의 소위 '홍상수의 여우들'과는 조금 다른 적극적인 화자도 되고 또 다른 인물들을 이끌어나가는 독자적인 역할이 주어진 것 같긴 하다.

    열혈남아가 나오지 않고, 기승전결이 뚜렷하지 않아 한국 또는 세계 영화의 상투적 흐름속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홍상수의 영화의 특색을 말하자면, 일상에 대한 관조, 살떨리는 대사들, 실소를 자아내는 지식인의 허위 등으로 독창성을 나타냈지만, <오! 수정> 이후의 일련의 작품들에선 오히려 그것이 그만의 클리셰가 되버린 느낌도 지울 수 없다. 이름만 바꾼 혹은 형식을 약간 비틀린 그의 주인공들은 이미 연속극처럼 차별성이 적어졌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누군가 "홍상수의 영화 중에서 뭐가 제일 괜찮니?"라고 묻는다면, 데뷰작과 <강원도의 힘>을 제외하고 나머지 영화들은 딱히 이 영화다 라고 답하기가 힘들다는 것이다. 조금 엉뚱한 추정이긴 하지만, 데뷰작 부터 이번 영화까지 출연한 기라성 같은 배우들, 유지태, 김승우, 김상경, 고현정, 김태우, 정보석, 문성근, 추상미, 이응경, 이은주, 성현아가 나왔던 모든 영화에 비해 오히려 무명의 백종학, 오윤홍의 <강원도의 힘>보다 그의 영화에 잘 어울리는 배우는 없었다는 생각이다.

    그러나 <해변의 여인>의 경우는 1년이라는 비교적 빠른 템포로 나온 영화이지만 앞서 말한 영화에 비해 조금 달라진 모습이 보인다.  여자가 적극적인 화자가 된 점과 더불어 여성과 여성의 관계 역시도 발전적이다.

    그간의 영화에서는 그런 역할은 남자의 전유물이었던 점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역할변화가 있지만 그래도 한계는 있었다. 예를들어 고현정이 송선미와 술자리에서 김승우를 두고 핏대를 올리던 장면. "남자는 여자가 선택하는 거야, 당신과 내가 선택하는거야"라고 호기좋게 송선미를 나무라던 고현정은 송선미가 울음을 터트리자 이내 그만 둔다. "너 여자구나!"란 말을 하고선. 그리고 한정된 시간과 공간 속에서 이루어진 즉흥적이고 표피적인 남녀 관계가 이번 영화에서는 조금의 인과관계와 공통점을 힌트처럼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다.

    말하자면 서해안에 모이는 모두에겐 어떤 아픔이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아픔을 딛고, 서로 위로해주고, 그래서 이겨낸다는 아름다운 이야기는 절대 아니고, 아픔을 잊어버렸거나 자기변명을 위해 이용한다거나 하는 역시나 홍상수식 이야기이다. 하지만 그 아픔에는 상흔이 있듯이 저마다의 사연으로 아파하고 있다. 결국 자신을 기만하는 자기합리화의 기제로 이용한다.

    김태우는 유부남임에도 불구하고 애인을 데리고 김승우와 여행을 온 주제에 오히려 식당에서 종업원에서 막대한 김승우를 '인간에 대한 예의'를 운운하며 지나치게 나무란다. 개를 무척 사랑하는 것처럼 보였던 윤동환 부부는 위선이라기 보다는 어떤 그럴만한 사연이 있을 법하게 개를 버리고 황급히 차를 타고 떠난다.

    집착하는 것을 나무라던 고현정은 김승우가 다른 여자와 잔 것과 오히려 그것보다도 여관문에 주인을 지키는 불독처럼 누워자고 있던 자신을 넘어서 갔는지 안갔는지에 대한 대답에 더 집착하고 있다. 야경이 좋은 밤 갯벌에서 김승우에게 "감독님하고 섹스 안해요!"라던 송선미는 남편 배신으로 몸서리치는 괴로움과 더불어 결국 김승우와 섹스를 한다. 이혼한 전부인때문에 괴로워한다던 고백을 나름대로 진지하게 했던 김승우도 고현정의 아픔은 뒤로한채 겨우 2장 쓴 시나리오에 희희낙낙하며 서울로 올라가 버린다.

    영화의 마지막엔 김승우의 우유부단한 태도에 아랑곳하지 않고 이별을 고하던 고현정은 모래사장에 바퀴가 빠져버린 차를 뒤에서 밀어주던 두 청년에게 너무너무 감사해 한다. 전에는 아마 몇날몇일을 앓았을 실연을, 이제는 곧 다른 상대를 만나 또 경솔하게 뜨겁고 어쩌면 곧 시들해져버린다하더라도 원래 '그런거지뭐..'하며 개의치 않는다는 듯이, 깊이 빠진 차 바퀴의 타이어가  모래에서 쉽게 빠져나온 것같은 그렇게 환한 웃음을 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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