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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왕의 남자 (爾: King And The Clown, 2005)
    영화이야기 2006. 4. 13. 17:15
    시대극이란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역사적 시대와 사건 그 인물들에 대한 작가의 관점과 새로운 해석 그리고 이를 좀더 효과적으로 나타내기 위해 허구적 인물을 동원시키기도 한다.

    최근 HBO의 미니시리즈 '로마' 12부작의 경우는 줄리어스 시저, 폼페이우스, 부루터스 등을 등장시켜 로마 공화정 말기를 그야말로 극사실주의에 기초하여 매우 생생하게 그려내며 여기에 가상의 인물인 보레누스와 폴로를 통해 역사적 사실을 더욱 생생하게 보강하여 주고 있다.

    이에 반해 '왕의 남자'는 조금 다른 구조의 시대극이라 할 수 있고 그 내용을 조금 들여다보면 실은 시대극이라기 보다는 러브스토리에 가깝다. 시대는 연산때이며 이들은 어떤 권위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사랑을 서로에게 보다 더 큰 몸짓으로 외부에 표출하고 주장하는 매우 비장하게도 능동적인 인물들이다.

    광대가 궁궐에서 판을 벌였던 것이 연산때만의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영화의 시대를 연산군때로 한것이 흥미롭다. 남색이라는 동성애적 기질이 연산에게 실제로 있었는지도 알 수 없는 일인 것이고 다만 내 추측으로는 연산이라는 왕에 대한 고정관념이 이 시대를 배경으로 삼은 가장 큰 이유가 아닐까 생각한다.

    나 역시도 연산에 대해 아는 바는 없지만, 성종의 용안에 흠집을 낸 것이 결정적인 이유로 사약을 받고 죽은 어미에 대한 복수와 성군으로 일컬어지는 선왕에 대한 컴플렉스로 인해 자신의 할미를 죽게하고 백모를 겁탈한 패륜아로 연상되는 500년 조선사에 거의 유일한 반미치광이 왕으로 인식되고 있다. 두번의 반정의 주인공인 두 명의 왕사이에서도 광해에 대한 왜곡에 대한 복권이 이뤄지는 반면에 연산에 대한 그런 연구는 이뤄지지 않는 것을 보면 아마도 대부분 사실일거란 생각이 든다.

    조선이 개국된 후 초기의 몇몇 왕들을 제외하고는 신권에 휘둘리고 외척에 몸살을 앓아 제대로 왕권을 행사하지 못한 왕들의 처지와 또 어릴 적 부터 제대로된 유교적 교육을 통해 지식과 교양을 쌓은 왕자들은 왕이 되어서도 특별하지는 않았지만 어느정도의 왕의 역할을 비슷하게 해내고 있었다고 생각한다. 궁에서 제대로 교육을 받지 못했던 철종과 고종을 제외하고는 아마 이런 파격적인(?) 인물은 연산이 최초이자 유일하지 않은가 싶다.

    영화 외적인 이야기가 길었는데 정치에 물들지 않은 주인공 광대 일행은 민심이라는 놀이판의 주제를 제대로 짚어내어 겁없이 저잣거리에서 왕을 가지고 노는 한판을 벌이다, 이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환관의 눈에 띄어 궁궐에서 왕과 대신들을 풍자하는 놀이판을 벌이게 된다. 이런 과정에서 이들은 자신이 원하던 원치않던 정치판에 휩싸이게되어 비극적인 상황에 몰리게 된다.

    이 영화에서 주인공 장생과 공길은 서로 사랑하는 사이다. 이 둘의 사랑은 동지애로 뭉쳐있으며 육체적이라기 보다는 순수한 것이다. 여인처럼 어여쁜 공길을 탐하는 대감님과 이를 막을려고 남색 현장을 덮쳐 공길을 데리고 탈출하는 장생 일행을 막으려던 사람을 공길은 죽여버리게 된다. 장생은 자기희생적이라면 공길은 이에 비해 단호한 편이다.

    한양으로 찾아들어온 이들의 사랑에 새로운 방해자는 지방 세도가와는 차원이 다른 권위 중의 권위인 왕이다. 위에서 말했듯이 그것도 다른 왕이 아닌 연산이다. 이는 드라마틱한 요소와 더불어 정상적인 것에 대한 공고한 신념이다. 즉 허용되지 않은 것에 대한 침범에 대한 보수적 태도라고 할 수 있다. 동성애에 대해서는 그것이 순수할 때 그것도 동지애라는 개연성이 있을 때는 이해할 수 있지만 동성애를 육체적으로 행하는 사람들은 탐관오리를 연상케하는 대감이나 연산군과 같은 패륜군주로 그려지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연산이 징벌하는 부패한 관리 역시도 매우 부당하단 느낌이 들고, 물론 연산을 몰아내려는 반정의 인물은 매우 강직하고 순수하게 보이고, 연산에게 조금이라도 선의를 가지는 사람이 할 수 있는 행동은 자살일 뿐인 것일까?

    게다가 이들의 비장한 사랑의 완성을 위해 연산은 실제보다 더욱 미쳐보이게 그려져야 했으며 중종반정이 일어나는 그 역사적 현장조차도 이 둘의 사랑의 비장함을 확인하는 장소로 장치로 사용된다. 이는 보수적 역사관에 입각한 의도적인 연출이라 볼 수 있다. 이에 덧붙여 악인이라는 자에게 모든 악행을 사실 이상으로 뒤집어 씌우는 낙인 행위라고 볼 수 있다.

    쓰다보니 마치 연산에 대해 내가 변호를 하는 것처럼 되어 버렸는데 그렇다기 보다는 빵을 훔친 장발장에게 머리부터 발끝까지 범인이며, 또 하지도 않은 강도짓 까지 했다고 누명을 씌우거나 이로인해 왕따를 만들어 버리는 지금의 현상이 얼핏 연상되었기 때문이다.

    사랑은 아름답고 위대하고 우리에게 감동을 주지만 그것이 기왕에 시대극의 형식을 띄고 있을 때는 좀 더 역사와 조화롭게 서로 대화하는 방식이었으면 좋을 것 같다. 장희빈이 사악해서 숙종이 국사를 망쳤다는 편협한 역사관은 무엇을 쉽게 규정하고 낙인 찍혀 희생양을 삼으려는 어떤 의도에 휩쓸리기 쉽기 때문이다.

    이 영화의 왕이 연산이 아닌 세종대왕이었다면 그리고 공길이 미소년이 아닌 여자였다면 영화에서처럼 컬트적이고 비장할 수 있었을까 생각해보면 작가의 상상력은 매우 뛰어나다 할 것이지만 암튼 장생과 공길은 자신들의 사랑의 비장감을 배가하기 위해 무덤 속에서 연산군을 깨어내 제대로 가지고 놀은 것 같다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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