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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고 검은 물고기 - 사마드 베흐랑기
    독후감 2006. 4. 13. 16:58

    몇 해 전 서점가에서 ‘내가 배워야 할 모든 것은 유치원에서 배웠다.’라는 소설이 베스트셀러에 오른 적이 있었다. 조금은 우스운 제목이기도 하지만 기성세대들을 끄는 무언가가 있기도 한 책이었다. 그 무엇인가는 바로 어린 시절의 추억인 것이다. 살아가면서 우리는 냉혹한 현실의 책무에 시달리고, 복잡한 논리에 얽매이고, 목표에 매달리고 또 스스로의 욕심에 포로가 되면서 순수함과 각자의 독창성이 빚어낸 고유의 인간성을 상실하게 된다. 그래서 마음의 고향이라고 할 수 있는 유년기의 순수한 추억을 다시금 우리의 가슴에 떠올리게 하는 만드는 것이 동화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란은 고대로부터 구전문학의 모티프가 되는 많은 작품들이 있었으며, 이는 방대한 페르시아의 문화를 토대로 하여 더욱 세련되고 풍부하게 발전하였다. 또한 시의 발달로 인한 운문의 화려한 기교와 풍부한 표현력 등은 이란 동화의 원동력이 되기에 충분하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문화적 토양에 덧붙여서 근대 이란의 시대적 요구에 부합하는 적극적 사회참여를 위한 동화를 쓴 작가가 바로 사마드 베흐랑기이다.

    흔히 아동을 대상으로 하는 장르인 동화를 형식으로 하고, 여기에 사회 의식적인 내용을 담은 사마드 베흐랑기의 동화를 어른들을 위한 동화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이러한 고도의 상징적인 작품들로 대표적인 것이 삶에 의미를 철학적으로 고찰한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 피트리크 쥐스킨트의 ‘좀머씨 이야기’ 등을 꼽을 수 있다.

    당시 이란의 시대 상황

    1921년 2월 레자 칸(Reza Khan)는 군사 쿠데타로 실권을 장악하였고 1925년 10월 의회가 아흐마드 샤(Ahmad Shah)의 폐위를 의결함으로써 가자르 왕조(1796년-1925년)는 역사에서 사라지게 되었다. 곧이어 레자칸은 레자 샤 파흘라비(Reza Shah Pahlavi)라는 이름으로 파흘라비 왕조를 수립하였다.

    제 2 차 세계 대전 후에 모사데그의 석유국유화 조처로 인해 영국과 미국의 권유를 받은 세계의 주요 석유회사들은 국유화 조치에 반대하여 국제적인 보이코트를 결행한 사건이 일어나는데 이때 샤는 국민들에게 인기가 높은 그를 해임할수 없었다.  결국 샤와 총리사이의 갈등이 심화되어 위기가 장기화되자 총리는 이란군의 지휘권을 장악하려고 노력했으나 성공하지 못했다. 1953년 8월 국왕은 총리를 제거하려 시도했으나 실패하자 국외로 망명했다. 그러나 며칠 뒤 이란군이 쿠데타를 일으켜 모사데크 총리를 제거한후 연금시켰다. 이 쿠데타 작전은 미국 정보국의 성공작이었다는 것이 수많은 미국자료와 이란의 대중매체는 의견을 일치하고 있었다.

    쿠데타가 성공한 직후 미국은 4500만 달러의 긴급원조금을 보낸후 뒤이어 군사,경제원조를 통하여 샤의 정부를 강화하면서 이란내에 영향력을 높혀나갔다. 1954년 8월에 새로운 석유협정을 맺었는데 그 내용을 보면 명목상으로는 국유화 조치를 인정했으나 실질적으로 유전의 운영은 영국-이란 석유회사 대신에 국제 석유 콘소시엄(Oil Consortium)에 넘어갔다.

    쿠데타 성공후 모사데그의 민족전선당과 투데당은 해산되고 주요당원은 체포 구금되는등 박해를 받았으며 일부는 외국으로 피신했다. 60년대에 들어와서 한 두 개의 야당도 명목상으로는 국왕의 은총 속에 등장했으나 어용야당으로 끝났으며 결사와 집회의 자유는 통제되었다.

    작고 검은 물고기

    매우 추운 어느 겨울날 바다에서 늙은 물고기는 12,000마리나 되는 자신의 어린 물고기들에게 ‘작고 검은 물고기’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으로 이 동화는 시작된다.

    옛날에 계곡으로 흘러가는 개울에 자신의 엄마와 함께 살던 ‘작고 검은 물고기’는 어느날 개울에 살고 있는 자신들의 변화없고 타성에 젖은 삶에 회의를 느끼기 시작한다.


    해가 뜨기 전의 이른 아침에 작고 검은 물고기는 엄마를 깨우고선 말했다. “ 엄마, 이야기 할것이 있어요.” 아직 잠이 덜깬 엄마는 대답했다. “ 아가야, 지금은 이야기하기에는 너무 이른시간이란다. 좀 있다 이야기 하자꾸나, 그리고 그 보단 수영하러 나가는 것이 좋지 않겠니?”, “안돼요, 엄마! 난 이제 수영하러 가지 않을꺼에요. 난 이곳을 떠날거에요”, “정말로 떠날 작정이니?”,“네, 엄마, 난 가야만 해요.”,“잠시만 기다려라! 이렇게 이른 아침에 어디로 떠난다는 거냐?”, “전 이 개울의 끝을 찾아 떠날 거에요. 엄마도 아다시피 난 이 개울의 끝이 어디일까 하고 항상 궁금해 해왔어요. 난 그생각외에는 다른 생각은 떠오르지 않아요. 난 밤에 잠도 오지 않을 정도였어요. 결국 전 개울의 끝이 어딘지를 찾아 떠나기로 결심했어요. 난 다른 곳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알고 싶다구요.”


    인간 진보의 역사는 세계에 대한 인간의식의 확대와 심화의 역사이기도 하다. 자기 주위의 자연환경에 대한 낮은 인식밖에 지니지 못하고, 자연의 힘을 신이 관장한다고 믿고 묵묵히 순응하며 살고 있던 시대를 벗어나게 하는 이런 의식의 자각은 지적 호기심과 정열에 기인한 치열한 노력과 투쟁의 산물이고 이제 이 ‘작고 검은 물고기’는 이러한 진보와 자유에 대한 열정을 막 깨닫기 시작하는 과정이 묘사되는 도입부인 것이다.

    이른 아침에 개울에서 일어난 위의 대화에서 ‘작고 검은 물고기’는 자신의 존재에 대한 자각과 자신이 살고 있는 곳에 대한 회의를 가지기 시작한다. 이것은 자신의 처지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나 집단에 대한 경종이며, 당시 외세에 침략에 대한 이란인의 각성을 촉구하는 고도의 상징인 것이다.

    이에 대비하여 다음은 안도현의 ‘연어’라는 작품의 한 대목을 보자.

    그 후로 은빛연어는 점점 외톨박이가 되어갔다. 수많은 연어들 중에는 그의 말상대가 되어 주는 연어는 그래도 누나뿐이었다. “내 동무들은 왜 나를 따돌리지?”, “왜 따돌린다고 생각하니? 오히려 너를 감싸고 있잖아?” 누나는 무엇이든지 긍정적으로만 생각하려고 한다. 그게 은빛연어는 답답했다. 누나는 아니다, 라는 단어를 모르는가? 아니면 알면서도 모르는 척 따돌리는 것인가?.........(중간생략)................ 그럴때마다 은빛연어는 동무들로부터 멀리 떠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떠나자!” 하고 은빛연어가 생각을 하면, “떠나서는 안돼!” 하고 마음속의 또다른 은빛연어가 그를 붙잡는 것이었다. 은빛연어는 머릿속으로 수없이 떠났지만, 실제로는 한번도 떠나지 못하였다.

    안도현의 ‘은빛연어’의 떠남의 동기는 ‘작고 검은 물고기’와는 다르다. ‘은빛연어’는 선천적으로 남들과 다르다는 조건으로 인한 구별로 괴로움을 받고 있는 것이다. 즉 다시 말해서 ‘작고 검은 물고기’는 자신의 자각에 의해서 자신의 집단을 떠나려고 한것과는 반대로 ‘은빛연어’는 피동적으로 떠나려는 것이다. 이는 마치 ‘가출’과 ‘출가’와의 차이와도 같다. 이같은 떠남의 동기의 차이는 나중에 두 물고기의 세계관의 차이로 발전하게 된다.

    다시 사마드 베흐랑기의 ‘작고 검은 물고기’로 돌아가 보자.

    그는 일곱 마리 물고기들의 줄기찬 설득과 조롱에도 불구하고, 또한 엄마의 눈물어린 만류에도 굴하지 않고 개울의 끝을 찾아 떠나기 시작한다. 그는 이 여정에서 오만한 올챙이와 개구리, 비열한 게를 만나기도 하면서 점점 세상에 대한 시야를 넓혀 가기 시작한다. 그는 도마뱀과의 만남을 통해 개울의 끝으로 가는 데에는 펠리컨과 황새치라는 장애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도마뱀에게 이를 퇴치할수 있는 풀로 만든 검을 선물 받게 된다.

    이 작품에서 펠리컨과 황새치의 존재는 주인공 물고기와 다른 모든 물고기들이 바다를 향해 떠나지 못하게 하는 궁극적인 이유가 된다. 또한 강가의 물고기들은 펠리컨이나 황새치가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두려움을 느끼고 자유를 추구하는 자신들의 생각에 억압을 받게 된다. 결국 이둘의 상징은 당시 이란 국민의 자유를 억압하는 군주 독재정치와 이란에 서서히 세력을 넓혀가던 외세인 미국을 은유한 것이다. 바로 이 부분이 베흐랑기의 동화가 단순한 아이들의 것이 아닌 어른들을 위한 동화라는 점을 극명하게 나타내주는 곳이라고 할수 있다. 사회개혁의 의지에 동참하는 것 그것을 위해 목숨을 바칠수도 있는 것 이러한 것들이 바로 베흐랑기가 사회를 바라보는 정치의식이다. 이런 맥락에서 작품의 다음 부분을 살펴보자.

    ‘작고 검은 물고기’는 바다의 표면을 헤엄치면서 다음과 같은 생각을 하였다.

      “죽음은 나와 아주 가까운 곳에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내가 살아 있는 동안에 나는 죽음과 대면하려 나가지 않을 것이다. 만약 어느날 내가 죽음에 직면하게 된다해도 그것은 별 문제가 안된다. 중요한 것은 나의 인생이나 죽음이 살아남은 다른 물고기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느냐인 것이다. ...”, ‘작고 검은 물고기’는 이러한 생각들을 추구 할 수는 없었다. 밑에서 잠복하던 황새치가 갑자기 그를 덥쳤던 것이다.  

    넓은 바다의 의미는 단지 양적으로 큰 물들의 집합이 아니다. ‘작고 검은 물고기’에게 있어서 바다는 바다까지 도달하면서 겪게된 경험을 바탕으로 한 풍부한 식견과 냉철한 판단력, 뛰어난 기지, 불같은 용기 등 이러한 모든 것들을 나타내는 과정인 것이다. 따라서 이대목에서는 처음의 단순한 호기심으로만 보였던 바다에 대한 추구가 한 개인의 존재의 각성과 의식에서 발전하여 타인과의 관계 나아가 사회와의 관계등을 적극적으로 표방하게 된다. 이는 다시한번 당시 이란사회에 대한 사마드 베흐랑기의 정치의식을 나타낸 것이다.

    다음은 안도현의 ‘연어’에서 주인공인 은빛연어가 강을 거슬러 오르기 위해 폭포를 앞에 두고 연어떼들에게 말을 하는 대목이다.

    “ 우리 연어들이 알을 낳는게 중요하다는 것은 나도 알아. 하지만 알을 낳고 못 낳고가 아니라, 얼마나 건강하고 좋은 알을 낳는가 하는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해. 우리가 쉬운 길을 택하기 시작하면 우리의 새끼들도 쉬운길로만 가려고 할것이고, 곧 거기에 익숙해지고 말거야. 그러나 우리가 폭포를 뛰어 넘는다면, 그 뛰어넘는 순간의 고통과 환희를 훗날 알을 깨고 나올 우리 새끼들에게 고스란히 남겨주게 되지 않을까?....”

    이 작품에서도 자신들의 삶에 안주하거나 타성에 젖어 가는 우리들에게 일성을 고하고 있다. 즉 삶을 치열하게 살아가는 태도를 중요하게 여기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부분은 베흐랑기의 작품의 주제와 일맥상통하는 것이긴 하지만, 두작품에서는 큰 차이점이 있다. 베흐랑기는 위에서 고찰한 바와 같이 여러 은유를 통해서 당시시대상황을 반영했지만, 안도현의 작품은 자신이 속해있는 집단의 발전 즉 다시 말해서 기존 질서의 강화를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즉 이것은 사회를 반영했다가 보다는 일종의 개인의 ‘성장’에 관한 동화인 것이다.

    따라서 두 작품의 비교를 통해 보더라도 베흐랑기의 동화의 현실참여적인 성격을 다시한번 엿볼수 있다.

    ‘작고 검은 물고기’는 마침내 강에 도달하게 되고 거기서 자신과 뜻은 같이 하지만 펠리컨이나 황새치의 존재에 두려움을 가지고 있는 물고기들을 만나게 된다. 그는 그들을 독려하여 같이 개울의 끝, 즉 바다를 향해 나가기로 하고 여기서 펠리컨의 주둥이에 삼켜져 도망쳐 나오기도 하고, 마침내 바다에 도달하여 황새치에게 잡히게 된다. 그는 기지를 발휘하여 황새치의 위속으로 들어가 죽음에 대한 두려움에 나약하게 떨고 있는 작은 물고기를 만나게 되어 그에게 용기와 세상에 나가 약탈하지 말 것을 당부하면서 그를 탈출시켜주고 자신은 위속에 남아서 황새치를 죽이고 자신도 장렬하게 생을 마감하게 된다.

    사마드 베흐랑기가 살던 당시의 이란의 국내외적 상황은 매우 열악했다. 내부의 독재정권과 외부의 외세의 개입은 당시 이란국민의 생활을 황폐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이러한 당시의 시대상황을 자국의 민족적 입장에서 아주 잘 알고 있던 베흐랑기는 자신의 ‘작고 검은 물고기’라는 작품을 통해서 현실을 고발하고 당시 이란민족의 각성을 촉구하였다.

    아제르바이잔의 한 지방에서 선생님을 하였던 사마드 베흐랑기는 이러한 경험을 토대로 하여 다양한 문화와 사회문제에서부터 교육문제에 이르기 가지 많은 것들을 자신의 작품에 담아 내었다. 이러한 그의 작품성향 때문에 그의 작품들은 샤의 독재정권하에서 검열에 의해 판금되었다. 특히 29세라는 젊은 나이에 요절한 그의 사망에 대한 의구심은 그의 존재가 독재자들에게 어느정도였는지를 나타내는 것일 것이다.

    또한 형식적인 면으로 볼 때 그는 동화라는 아동 대상의 글쓰기 방식을 택하면서도 고도의 은유와 상징으로 매우 리얼리즘에 입각한 작품을 남겼다. 특히 같은 방식의 국내 동화작가인 안도현의 ‘연어’라는 작품과의 비교를 통해 베흐랑기가 그의 작품을 통해 표현하고자 했던 사회참여의식의 열정을 더 잘알수 있게 되었다. 다른 작품들이 동화라는 형식에 어느 정도 구애를 받아 개인의 문제에 치중했다고 한다면 그는 그들과는 다르게 자신만의 독특한 세계를 추구한 것이다. 따라서 그의 작품은 당시 독재라는 암울한 시대에 살던 이란 민중들에게 자국의 현실을 고발하고 내부의 개혁역량을 고무하는 등대와도 같은 역할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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