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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용서의 어려움
    책갈피 2023. 11. 7. 16:18

    책에서 용서의 어려움을 배웠습니다. 책은 <기억 전쟁>이며 서강대 임지현 교수가 썼습니다. 주된 주제는 전후 세대가 가지고 있는 가해자와 피해자 의식에 대한 것인데요. 책에서는 전후 세대는 실존적으로는 과거 세대에서 벌어진 범죄에 책임은 없다하겠지만, 과거를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라는 크고 무거운 인식과 행동은 전적으로 그들의 과제이며 책임이라고 주창하고 있습니다. 이 책에서 나오는 한 대목을 옮겨봅니다. 


    <용서의 어려움>


    가해자가 적절하게 사과하고 용서를 구하는 것도 어렵지만, 피해자가 가해자 를 용서하는 것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바르샤바 출신의 유대교 랍비 아브라 함 요수아 헤셸(Abraham Joshua Heschel)은 사과와 용서의 엇박자에 대해 흥미로운 일화를 들려준다. 유명한 학자이자 고매한 인격자로 알려진 한 랍비가 바르샤바 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기차여행 중에 겪은 일이다.

    랍비가 객실의 자기 자리에 앉자 벌써부터 카드놀이에 열중하고 있던 옆자리 의 상인들이 같이 놀자고 권했다. 랍비는 카드놀이를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며 정중히 사양하고 초연한 듯 앉아 있었다. 하지만 무리에 끼지 않는 랍비의 존재 가 눈에 거슬렸던 한 명이 기어이 랍비의 멱살을 잡고 객실에서 그를 쫓아냈다. 쫓겨난 랍비는 복도에 선 채로 목적지까지 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객실에서 랍비에게 무례하게 굴었던 상인들은 목적지의 플랫폼에 내리자마자 당혹스러운 광경과 마주쳤다.

    기차에서 내린 랍비를 알아본 많은 사람이 달려와 반기며 랍 비에게 악수를 청하기 때문이었다. 그제야 자신이 객실에서 쫓아낸 옆자리의 승 객이 브레스트-리토프스크(Brest-Litowsk, 흰 벨라루스의 브레스트Brest)의 존경받는 랍비 임을 알게 된 상인은 곧바로 자신이 한 짓을 용서해달라고 청했다. 그러나 랍비 는 그를 용서해주지 않았다. 도무지 마음이 편치 않았던 상인은 그날 저녁 랍비의 집을 찾아가 300루블의 위로금을 내밀며 다시 용서를 청했다. 랍비의 대답은 간단했다. 그럴 수 없다는 것이었다. 랍비의 완강한 태도에 사람들은 모두 의아해했다. 그토록 고매한 인 격의 소유자가 어찌 그만한 일로 토라져서 용서를 거부한단 말인가?

    결국 랍비 의 큰아들이 나섰다. 조심스러운 대화 끝에, 누군가 세 번 이상 용서를 간청하면 반드시 용서해주어야 한다는 용서의 율법이 아버지의 입에서 나오자. 그 틈을 타서 아들은 용서를 간청하던 상인의 이름을 꺼냈다. 용서의 율법에 따라 상인 도 용서해야 하지 않겠냐고 물었다. 그러자 랍비는 이렇게 답했다. "나는 그를 용서하고 싶어도 용서할 수가 없다. 기차 안에서 그는 내가 누군지 몰랐다. 그러 니까 그는 내가 아니라 어느 이름 없는 사람에게 죄를 지은 셈이지. 그러니 나 말고 그 이름 없는 사람을 찾아가 용서를 구하는 게 옳다."

    아브라함 헤셀이 전한 이 일화는 누구도 자기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에게 저 질러진 죄를 대신 용서해줄 수 없다는 유대교의 가르침에 대한 것이다. 유대교가 아니라 존재론의 상식적 관점에서 보아도 제3자가 피해자를 대신해 가해자를 용서할 수 있는지 의문스럽다. 기차 안의 랍비에 관한 이 일화는 사실 '나치 사 냥꾼'이라 불리는 시몬 비젠탈의 곤혹스러운 질문에 대한 헤셀의 우회적 답변이 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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