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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벼랑 위의 포뇨 (崖の上のポニョ: Ponyo On The Cliff, 2008)
    영화이야기 2011. 9. 27. 12:33
    '보이는 것이 전부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공공연한' 거짓말이라는 것이 있다. 이를테면 우리는 곧이 곧대로 광고의 문구와 영상을 믿지는 않으며 그 암묵적 협의를 깨는 경우를 소위 '과장', '사기'로 처벌하기도 한다 . 그렇지만 특별히 신경쓰지 않는 사이에 광고에 속아 넘어가거나, 실망하는 경우도 다반사다. 

    광고의 예를 들긴 했지만 현실은 그보다도 심각한 경우가 많다. 왜냐면 공공연하지도 않거니와 곧이곧대로 믿지 않는다는 암묵을 지키기엔 우리 삶이 너무 피곤해질 수도 있으니. 그렇기 때문에  눈에 보일 때는 상냥했던 사람이 알고보면 좋지 않은 목적을 가지고 나에게 접근했다던가, 믿을만 하다고 기대했던 정치인이 막상 뽑히고 나면 형편없는 협잡꾼이라 크게 실망하는 경우도 많다. 

    논의를 확대해 보자면 최근에 수 많은 군인과 민간인의 생명을 앗아간 이라크 전쟁이  '대량살상무기' 제거때문이란 엄청난 거짓 명분은 그야말로 크나큰 충격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국제사회의 힘의 논리는 소위 '보이는 세상'의 부조리와 거짓이 얼마나 거대한 것인가를 극명하게 드러내 주고 있다. 

    이러한 무시무시한 거짓이 주는 우리 세계에 대한 영향은 시민사회가 분연히 일어나 본노하는 일이나 위정자들의 반성이 아니라 되려 세상과 거대한 힘에 대한 '공포'를 증대시키는 역할을 한다. 공포가 발전하면 포기하거나 체념하게 되며 나아가서는 '동일시'하게 된다. 

    영화를 보는 관객에도 이런 영향에서 자유롭지 않다. 그러나 관객의 입장에서 같은 영화를 보게되면 모두가 동일한 감상을 받게 되리라는 것은 넌센스다. 그렇지만 본말이 전도되는 것 또한 환영할만한 일은 아니다.

    최근에 관객이 영화에서 공식적으로 밝힌 주제 외에 그 속에 숨은 암시나 복선의 디테일 찾기에 열광하는 경향이 심화되고 있다. 이를테면 <살인의 추억>은 영화 속 80년대 독재에 비판이나 <괴물>속의 '반미'에 집착한다. 사실 엄밀히 말하자면 그것은 영화의 배경이지 직접적인 메세지라고 할 수는 없다. (보수 언론의 꼬투리 잡기와는 다른 관점의 이야기이다)

    어떤 면에서는 이것은 수동적인 영화읽기에서 직접적으로 기대를 표현하는 적극적인 영화보기라고 할 수 있지만, 다른 면에선 지적 허영이나 자기 왜곡일 수도 있다. 앞서 말한 영화의 행간의 뜻을 파악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고, 감독들 역시도 그걸 즐기는 경향이 있다. 소위 '열린 결말'이라는 불확실성이 유행하고, 영화 곳곳 카메라 속에서 그러한 근거를 찾아내고 분석하고 즐기는 것은 이제 하나의 '트렌드'처럼 굳혀지고 있다.

    지브리의 그동안의 작품 속에선 반전, 환경보호 등 메세지를 함유했던 것은 사실이다. <벼랑위의 포뇨>라는 동화는 한줄기 휴식이 될 수도 있지만, 아마도 보이는 것이 전부라는 점에 실망하는 팬들도 꽤 되는 것 같다.  

    쓸떼없는 말이 길었다. 그런 점에서 보자면 미야자키 히야호의 '벼랑위의 포뇨'야 말로 감독 자신의 작가 정신, 그리고 동심의 세계의 모험을 그대로 표현한 작품이란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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